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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행복이란 연필로 쓰는 것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82호 29면

세계적인 행복 연구자인 심리학자 에드 디너(Ed Diener) 교수는 행복이라는 모호한 개념 대신 과학적 연구를 위해 ‘주관적 안녕감’이라는 정의를 고안했다. 그에 따르면 행복은 객관적이기보다 주관적 개념이다. 다음을 보자.

철수는 연봉이 5000만 원이다.
민수는 연봉이 4000만 원이다.

단순히 연봉만으로 볼 때 철수와 민수 중 누가 더 행복할까? 연봉을 제외한 모든 조건이 같다면 철수가 민수보다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철수의 연봉은 작년 6000만 원에서 올해 5000만 원으로 삭감된 것이고, 민수의 연봉은 3000만 원에서 4000만 원으로 오른 상황이라면, 주관적으로 느끼는 행복감은 민수가 더 높다. 왜냐하면 현재 보유한 연봉 그 자체보다는 연봉의 변화 방향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만족감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즉 주관적 만족감은 보유자산의 절대량보다 이전 보유량을 기준점으로 하여 이후 자산의 변화방향이 플러스냐(이익) 마이너스냐(손실)에 따라 좌우된다. 우리의 뇌는 특정한 기준점을 두고 이익방향으로의 변화는 기분 좋은 것, 손실방향으로의 변화는 기분 나쁜 것으로 즉각 연결시킨다. 이러한 감정적 지각은 주관적 만족감에 영향을 미치는 데 이 과정에서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주관적 만족감’으로 쉽게 대체 되는 것이다.

결국 주관적 만족감은 사람들마다 자신만의 기준점과 이후 변화방향에 따라 결정되는 상대적 개념이다. 이러한 기준점은 보유자산과 같은 재정적 요소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같은 비재정적 요소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한 때 세계 랭킹 1위였다가 9위로 하락한 테니스 선수보다, 랭킹 20위에서 차근차근 올라와 10위에 진입한 선수의 주관적 만족감이 더욱 크다. 인간의 기준점은 행복감뿐만 아니라 다음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다음을 보자

A. 동전을 던져 앞면이면 한 푼도 못 받고, 뒷면이면 5억원을 받는다.
B. 확실히 2억원을 얻는다.

당신은 A와 B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A의 기대값은 2억5000만원(5억×50%)이고 B는 2억원(2억원×100%)이다. 인간을 100% 이성적 존재로 규정하는 경제학은 당신이 A를 선택할 것으로 예측한다.

그러나, 현재 당신은 수중에 한 푼도 없고 당장 갚아야 할 대출은 1억원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운만 좋으면 한 푼도 없는 처지에서 순식간에 5억원을 확보할 수 있는 A는 분명 매력적일 것이다. 하지만 운 나쁘면 5억원이란 거금을 날려버릴 50%의 확률은 대출금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너무 위험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확실하게 2억원을 받아 대출을 정리하고 1억원을 확보하는 B가 더욱 안전하게 느껴질 것이다.

반대로 당신은 이미 100억대 부자이며 어떠한 대출도 없다고 상상해 보자. 확실하게 2억원을 챙길 수 있는 B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운만 좋으면 5억원을 수중에 넣을 수 있고, 혹시 운이 나쁘더라도 이미 수중에 100억원이나 있기 때문에 위험은 크게 다가오지 않는 A가 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현재 어떤 상황에 있느냐에 따라 기준점이 생기고, 이 기준점에 따라 향후의 행동이 달라진다.

많은 사람들이 대박을 꿈꾼다. 그러나 한 순간의 대박으로 높아진 기준점은 오히려 이후 삶의 만족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 반대로 처음에 어려움을 겪더라도 점차 나아지는 삶은 지속적인 만족감을 준다. 또한 행복이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고,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와 같이 철저히 주관적인 문제이다. 행복은 연필로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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