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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야유할 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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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영목
번역가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애정 어린 비판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데, 하물며 야유를 감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행동의 결과가 많든 적든 익명의 다수에게 공개되는 사람들은 어차피 갈채만큼이나 야유에도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팬’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서 나오지 않으려 하기도 하고, 갈채는 선하지만 야유는 비신사적이라는 묘한 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나를 칭찬할 때는 박수만 쳐도 되지만, 비판하려면 야유를 하지 말고 예의와 격식을 갖추라는 것이다. 하지만 갈채나 야유나 그 안에 담긴 감정과 태도만 다를 뿐 표현 수준에서는 거리가 멀지 않다. 따라서 공정하게 보자면, 갈채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야유도 받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며 갈채가 허용되는 공간에서는 야유도 허용되어야 한다.

 코엔 형제가 감독한 영화 ‘인사이드 르윈’의 주인공인 무명가수 르윈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그는 허름한 공연장에서 관습에 물든 노래를 부르는 여가수에게 거침없이 야유를 퍼붓는다. 원래 그런 노래에 대한 반감도 있었던 데다 개인적인 일까지 겹치는 바람에 야유는 독기를 띠고, 다른 청중마저도 그에게 눈총을 준다. 결국 르윈은 쫓겨나지만 다음 날 다시 찾아갔을 때 주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맞아주고, 이번에는 르윈 자신이 무대에서 갈채와 야유의 가능성 앞에 몸을 드러낸다. 그가 보기에 ‘쇼’는 그런 식으로 굴러가는 것이다. 그러나 수모를 당한 여가수의 남편은 쇼 밖에 있다. 그는 르윈의 야유를 폭력으로 응징하고, 자기 아내는 노래를 하려고 했을 뿐 이런 ‘시궁창’에 발을 담그려던 것이 아니라며 자리를 뜬다.

 르윈이 간절히 원했으나 도달하지 못했던 곳에 도달한 밥 딜런도 바로 그런 시궁창에서 노래를 했던 가수다. 그는 통기타와 강렬한 노랫말로 저항적 청년문화의 상징으로 떠올랐다가, 전기 기타를 들고 밴드와 함께 나오면서 상업 문화에 투항했다고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 특히 영국 공연에서는 가는 곳마다 야유에 부닥쳤는데, 르윈과 마찬가지로 딜런도 표를 산 사람은 야유할 권리가 있다며 개의치 않는 입장이었다. 이런 태도의 밑바닥에는 야유가 아닌 갈채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1966년 런던 공연에서는 청중 한 사람이 그를 향해 “유다”라고 외쳤다. 공연 사상 최악의 야유로 꼽히는 외침이었다. 딜런은 그에게 거짓말쟁이라고 응수한 뒤 곧 강렬한 감정을 실어 ‘구르는 돌멩이처럼(Like a Rolling Stone)’을 부르는데, 이 열창으로 야유는 갈채로 바뀐다.

 그러나 미국 노래의 역사를 바꾸었다는 찬사를 받는 ‘구르는 돌멩이처럼’ 자체가 사실은 야유와 조롱이다. 이 노래는 한 몰락한 인간을 향해, 한때 잘나간다고 으스대더니 이제 다음 끼니를 걱정하는 신세가 되고,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처럼 미미한 존재가 되었는데, 그 기분이 어떠냐고 조롱한다. 결국 청중의 조롱에 딜런 식의 조롱으로 답한 것이니, 야유에 관한 한 딜런은 누구에게도 질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구르는 돌멩이처럼’의 신랄한 조롱은 결국 딜런 자신을 향하고 있고, 자신을 르윈 같은 무명가수와 동일시하고 있으며, 그래서 이 노래의 울림이 그렇게 강렬한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그는 그 어떤 청중보다 가혹하게 자기 자신을 야유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당대의 최고 스타가 불과 20대 중반의 나이에 지지자들의 갈채에 의지하여 자신에 대한 환상을 부풀리기보다는, 자신도 얼마든지 야유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모질게 야유했던 것이다. 밥 딜런이 오늘날에도 화석이 되지 않고 중요한 현역 뮤지션으로 빛을 발하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국 남에게 야유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자신이 갈채로 죽는 것을 막는 영리한 방법일 수도 있다. 늘 갈채를 받으며 산다는 허영에서 벗어나, 야유를 응징할 수 있다는 자만에서 벗어나, 나 또한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는 겸허한 자각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런 영리함은 찾아주지 않겠지만.

정영목 번역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약력: 서울대 영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