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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원자력은 에너지 주권의 중심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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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장문희
한국원자력학회 수석부회장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에서 세계화는 괄목할 정도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에선 정치회합과 경제활동·문화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화에 매진한 덕분에 우리는 ‘G8’에 접근하는 위상을 갖게 됐다. 노벨상을 받은 석학이 우리 대학 강단에 서있고, 연구개발 현장에는 외국인 과학기술자가 넘쳐나고 있다. 한류는 세계를 휩쓸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 영역에서도 세계화가 대세인지는 살펴봐야 한다. 필자는 ‘절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에너지는 석유·석탄·우라늄·태양열·바람 같은 에너지원에서 나온다. 바람과 태양열 등은 국경이 없지만, 사용도가 높은 석유·석탄·우라늄 등은 매장하고 있는 나라만 캘 수 있다. 물론 돈을 주면 사올 순 있다. 그러나 끊임없이 변화는 게 세상이다. 자원부국들도 자원의 유한성을 알고 있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한다. 그래서 자원을 보전하고 아끼려 한다.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 ‘자원의 민족자본화’ 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이 심해지면 분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인류역사의 많은 분쟁이 자원확보 경쟁에서 비롯됐다.

 이런 점에서 에너지는 세계화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정치·외교 갈등이 생기면 ‘에너지 이웃’도 한 순간 등을 돌린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에너지가 고갈되면 춥고 어두우며 TV와 냉장고도 없는 촛불시절로 돌아갈 수도 있다. 우리는 자원빈국인데도 온갖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 그 즐거움을 이어가고 싶다면 미래의 에너지 안보를 생각해봐야 한다.

 에너지 자주성을 지킬 수 있는 에너지원은 어떤 조건을 갖춰야할까. 기술성·경제성·안전성·지속가능성·가용성·환경친화성 등이 많은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킬 우리의 에너지원은 원자력이다. 우리에게는 원자력이 다른 에너지원보다 가장 주권화가 쉽다. 세계 최고수준인 고유 기술이 있고, 연구 인력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원자력 주권화를 강화해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다시 에너지를 뽑아 쓸 수 있는 사용후 핵연료 활용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사용후 핵연료는 폐기해야 할 쓰레기가 아니다. 다만 재활용에는 정치·외교적으로 난관이 많은데 그것을 뚫어낼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미래를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재단하지 말자. 이는 기술의 진보를 부정하는 어리석은 판단이다. 우리가 확보해놓은 풍부한 연구 인력의 가치를 제대로 보라는 이야기다. 고준위 폐기물을 줄여야 한다는 필요성을 고려한다면 사용후 핵연료의 재활용 기술을 개발해야할 이유와 명분은 충분하다. 자원빈국에서는 기술개발만이 생존과 지속성장을 보장한다.

 헨리 키신저는 “에너지를 지배하면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세계를 지배하자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에너지가 부족하여 지배당하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일제 35년이 부끄럽고 고통스러웠다면, 주권화할 수 있는 우리의 에너지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에너지안보와 지속성장은 친숙한 이웃조차도 친절하게 배려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오로지 우리의 과제다.

장문희 한국원자력학회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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