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은 도덕론, 활동은 반전파|29일 별세한 미철학자 「마르쿠제」의 생애|산업사회의 모순과 인간의 소외 파헤쳐|행동없는 혁명이론가...실존주의를 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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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60년대에 들어서「캘리포니아」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자유운동이 미국을 흽쓸었을 때 그 정신적 지도자로 각광을 받았던「헤르베르트·마르쿠제」가 고국인 서독방문중 29일밤「뮌헨」근처「슈타른베르크」의 병원에서 지병인 심장병으로 숨졌다. 향년 81세.
당시 이미 7O세의 고령이었던 그는 68년 5월 「프랑스」대학생들의 소요를 계기로 학생운동가들의 우상이 되었다.
특히 그의『일차원적인 인간』은「베스트셀러」가 됐고「매스컴」은 그를 정치운동가, 서구의 유일한혁명리논가로 평가했다. 그의 생애에 한번도. 혁명행동을 해본적이 없는 7O세의 온건한 철학교수가 혁명적 지도자로 등장했던 것이다.
그는 단지『모든것은 언제나 소수의 지식인들에 의해 반동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의 이론이 넓은 공명을 얻은 것은 그가 사회비평가로서 현존의 산업사회의 변혁을 호소하며 도덕이론에 근거해서 선진 산업사회의 현실적 결함을 폭로하고 기술과 과학의 합리적 억압을 부정한 때문이었다. .
독일철학자「하이데거」의 제자였던 그는 28년 첫논문『사적유물논의 현상학』에서 벌써 사회비평가로 등장했다.
그는「마르크스」주의의 이해와 비판을 위해 실존주의를 내세웠다. 역사과정의 기계논에 반대하고 주관적관념론과 실존주의적 인간의 입장을 강조했다. 의식적·사회적 인간만이 역사변화의 가능성을 갖는 자라는 것이다.
그는 또 자본주의사회에 대해서 인간 일반의 입장에서 비판하고 부정한다. 그러나 그 반자본주의는 계급투쟁을 근거로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실존적 자발성에 기초한것이다.
그는 인간존재의「현재」에 구체적으로 접근해서 현대산업사회의 현실이 인간에게 위험적 상황을 이루고 있다고 단정했다.
1898년 7월1일「베를린」에서 유대계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는 34년 「뉴욕」에 이주한후「프랑크푸르트」사회학파와 공동연구를 계속했다.
그는 특히「포르크하이머」와「아도르노」의 사상의 영향아래 정신분석학·신「헤겔」주의적 철학·사회학을 통일하려는 시도에서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을 받아들여 「좌익적」 이란 지칭을 들었다.
그는 「헤겔」의 이성의 부정성을 자기의『부정적변증법』의 출발점으로 삼고 53년『이성과 혁명』2판에선『이성은 그 본질에 있어서 모순이고 대립이며 부정』이라고 주장, 『만일 이성의 모순적·부정적 힘이 분쇄되면 현실은 그 자신의 실증적법칙에따라 움직이고 그 억압의 힘을 넓힌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현대의 철학사상, 특히 영미의 철학은 순응주의적·무비판적 성격으로 부패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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