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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미의 함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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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아름다움은 조화와 균형과 개성의 결정이다. 영국시인 「존 키츠」는 그런 아름다움을 “영원한 기쁨”이라고까지 표현 했었다.
도시의 미도 예외는 아니다. 「프랑스」의 「파리」는 아직도 그 아름다움으로 하여 세계인들의 애호를 받고 있다. 이 도시는 지난 5세기동안 전쟁, 동란, 혁명 등 파란의 역사를 수없이 겪으면서도 그 고아의 미를 잃지 않고 다소곳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시대의 변모에 따라 인구 팽창과 혼란의 추세는 끊임없이 「파리」의 아름다움을 위협했었다. 오늘의 「파리」는 공한지도 독립주택도 별로 없는(전체의 7.4%) 숨 막히는 도시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파리」임엔 틀림없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벌써부터 단호한 정책을 수립해 「파리」를 아름다운 도시로 지켜왔기 때문이다.
첫째 수도권으로의 집중현상을 능화하기 위해 「파리」의 산업발전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미 1955년부터 산업 및 빌딩 용지를 폐기하고 공원이나 주차장으로 전환하는 경우는 정부가 과감하게 보조금을 지급했다.
둘째는 건설성안에 「파리」 수도권 정비 위원회를 두고 중심도시의 기능을 분산시켰다. 중핵도시를 따로 만들어 관청이나 대건물의 팽창을 그곳에서 박화했다.
제3의 정책으로는 「파리」의 외부도시 건설을 포함해 이제까지 뒤지고 있던 「프랑스」 도시계획 사업을 전반적으로 발전시키는 정책을 채택했다.
실제의 도시계획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은 영세, 완고한 지주와 건물주의 아집이다. 「프랑스」 정부는 토지법을 강화해 기존 건물이라도 도시미관의 강화를 위해서는 강제 철거령을 내리는 등 수용과 명령의 길을 넓혔다. 한편 공공 단체의 토지구매에는 낮은 이자의 융자를 보장해주고 있다. 협동조합 방식에 의한 구역별 도시 계획도 인상적인 제도다.
결국 이런 다각적이고 핵심적이며 합리적인 정책들이 「파리」의 아름다움을 지켜준 것이다. 하다못해 가로수 하나를 바꾸어 심을 때도 그 주변의 환경에 맞추어 높이와 수종과 수령을 제한하는 것이다.
현대건설의 한 심벌이 되다시피 한 「파리」의 「유네스코」 빌딩도 이른바 「파리」시의 「콩담나시옹」 조례(폐기요결)를 입증하는 하나의 살아있는 증거다. 전신의 구건물은 도시미에 손상을 준다는 이유로 철거되고 지금의 새 설계로 다시 건축된 것이다.
바로 그 본고장인 「프랑스」의 한 외교관이 우리나라 경복궁 경회루 연회장에서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며 한탄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국경일에 외국사신들을 초대해 한국적 건축미를 자랑해 보였던 경회루의 미려한 경관도 미구에 그 주위에 들어서는 공룡 같은 고층 건물들 때문에 완전히 망가지고 말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불행히도 오늘 그의 예언은 적중하고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서울역에서 수도의 정면인 동대문을 바라보면 어느새 괴기한 공룡들의 모습을 한 빌딩들이 국보 제 1호라는 동대문을 짓누르고 있다. 양식도, 규격도, 색채도 제멋대로인 빌딩 숲 속에 국보 문화재가 완전히 함몰하고 만 것이다. 독립문은 벌써 그 발길에 차여 길옆으로 밀려나기까지 했다.
5백 80여년의 고도다운 서울의 모습은 물론, 전국의 어딜 가나 어느 한구석 마음이 가는 고유의 미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무질서와 불균형과 조잡만이 난무하는 도시와 사적 주변. 서울을 비롯하여 전 국토는 점차 환경도 정감도, 역사와 문화의 축적도 없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 그 많은 행정력과 집행능력이 도시미의 함몰을 위해서만 발동하고 있는 느낌조차 준다.
그러나 아직도 늦지는 않다. 문화재의 빚을 잃지 않게 하면서 한국적 도시미를 창조하기 위해 서울을 비롯한 경주, 공주, 전주, 수원, 남원 등 역사적 유서가 있는 고장마다 각계 각도의 보임있는 자문을 받는 제도적 장치와 그 성실한 운영으로 우미하고 장려한 우리의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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