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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문예 1908년부터 시작|국민대 주종연교수, 연구논문서 밝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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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나라 최초의 현상문예는 신문학개화와 때를 같이한 1908년에 실시됐으며 최초의 신춘문예는 1916년에 실시됐다는 새로운 연구발표가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신문·잡지의 현상 및 신춘문예행사가 신문학 초창기에 문인배출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잡지가 독자를 대상으로 문예작품을 모집한 것은 1917년의「청춘」지가, 신춘문예는 1925년 동아일보가 처음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주종연교수(국민대·국문학·문박)의 연구에 따르면 현상문예는 1908년「태극학보」에 의해, 신춘문예는 1916년 「매일신보」에 의해 처음 실시됐다는 것.
주교수의 박사학위논문 「한국근대단편소설연구』는 우리나라 근대단편소설 형성의 외적요인으로서 ①현상단편소설 ②외국단편소설의 번역 ③신문·잡지의 간행으로 꼽고 이러한 요소들이 근대단편소설의 정착에 매우 큰 활력소 및 자극제의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 논문에 의하면 1906년 창간한「태극학보」가 이듬해 10월부터 독자투고난을 마련하고 문예물을 비롯한 각종 논설을 공모했는데 이것이 독자를 대상으로 한 문예작품모집의 효시라는 것이다. 주교수는 이것을 본격적인 현상문예로 보기는 어렵지만 모집부문중에 소설이 포함되어 있음을 감안할 때 본격적인 현상문예의 전단계 조치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태극학보」가 일반 투서속에 문예작품을 포함시켰고 게재작품에 대한 상금도 없었던 반면 같은해(1908년) 창간된 「장학보」(혹은 「장학월보」)는 뒤이어 소설(순국문단편)을 독립부문으로 1등 10환, 2등 5환등 상금까지 걸고 모집, 본격적인 현상문예를 시작했다고 이 논문은 밝히고 있다.
한편 「매일신보」는 1916년12월 「신년문예모집」이란 명칭으로 단편소설·논문·신조가사등 3개 부문에 걸쳐 작품을 모집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신춘문예의 효시라는 주교수의 주장이다.
그러나 주교수는 이와같은 행사들이 그 이후 활발하게, 본격적으로 실시된 각종 현상문예에 자극을 주었을뿐 근대 단편소설의 형식면에서 효시를 이룬 것은 아니리고 부연했다.
왜냐하면 작품규격에 있어서도 잡지가 3∼5장(2백자 원고지), 신문이 7∼8장을 요구했으며「장학보」등의 입선작들도 개학기소설의 표현양식을 뛰어넘지 못하고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교수는 이무렵 잡지현상문예 모집에서의 단편소설에 관한 제약과 그모집 요강이 근대 단편소설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하고 「장학보」등 이 무렵의 현상문예 입선작들을 분석, 그들 작품의 경향을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첫째는 「교훈적 주지」로 이것은 전대소설적 특성을 답습한 것이며 둘째는 「개화기적 의지의 표출」로 이것은 근대소설적 인식의 발로로 볼 수 있고 세째는「직접화법의 표기」로 이것은 근대소설의 표기형식으로 넘어오는 과도기적 조치라는 것이다.
이 논문은 또 외국단편소설의 번역소개 역시 1908년 「소년」지에서 육당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며 역자들중 몽몽·주요한·진학문등이 번역과 함께 뛰어난 단편소설을 창작하여 단편문학 발전에 기여했다고 지적했다. 이 논문은 형설출판사에 의해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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