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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370 → 166명 … 청와대 "큰일났네, VIP 보고 끝났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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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4월 16일과 17일, 청와대와 해양경찰청 근무자 간의 전화통화 내역이 공개됐다. 사고 당시 ‘370명이 구조됐다’는 오보는 해경이 청와대에 잘못 보고한 것이고, 청와대는 사고 발생 5시간이 지나도록 정확한 실종자 수를 파악하지 못해 혼선을 빚은 것으로 드러났다. 해경이 현장에 119구조대원이 도착했는데도 “잠깐만요”라며 대기만 시킨 사실, 청와대가 구조지시는 내리지 않고 “어이구, 큰일났네”라며 대통령 보고에 전전긍긍했던 정황도 담겼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현미·우원식·최민희 의원은 2일 국회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했다.

세월호 국정조사특위 야당 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김현미 의원(왼쪽)과 김광진 의원(오른쪽)이 2일 오후 여의도 국회 새누리당 국정조사 종합상황실에서 심재철 위원장과 여당 간사인 조원진 의원을 만난 뒤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날 “김광진 의원이 청와대와 해경청 간 통화 녹취록을 왜곡해 박근혜 대통령을 모욕했다”며 항의해 한때 회의가 파행했으나 이날 오후 늦게 다시 열렸다. [뉴스1]

 ◆구조 시기 놓친 해경=사고발생(오전8시48분) 1시간이 지난 4월 16일 9시54분,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실은 해경에 전화해 “지금 구조작업은 하고 있나요”라고 묻는다. 이에 해경은 “아, 아직 구조단계는 아니구요. 지켜보고 있는 단계”라며 “지금 (배에서)뛰어내린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라고 답했다. 승객이 빠져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적극적으로 구조에 나서지 않아 비판을 받았던 해경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취록에 들어 있다. 또 해경이 이날 낮 12시50분, 119 중앙상황실의 지원 제안에도 답을 주지 않고 시간만 끈 정황도 드러났다.

 ▶119=“우리 헬기가 (사고 현장에)도착해 있는데, 수난구조 전문요원들이 다 탑승을 하고 있거든요. 배 안에 구조 요구자가 있으면 바로 그냥 투입을 해서 잠수를 해서 출동이 가능한 대원들인데요.”

 ▶해경=“아 그거는요. (담당자)바꿔드릴게요.”

 ▶119=(앞선 구조 제안을 반복한 뒤)“구조자가 몇 명이나 있을까요?”

 ▶해경=“지금 말씀드렸다시피 잠깐만요.”(다시 전화를 돌림)

 ▶해경=“어떤 내용이세요?”

 ▶119=“아, 아까 말씀을 다 드렸는데….(구조 제안 반복)”

 ▶해경=“지금 아직 준비 중인 거 같습니다.”

 ▶119=“저희들이 그러면 어느 분하고 통화를 하고 지원을 해드리면 되는지요?”

 ▶해경=“아, 그러면 잠깐만요.”

 세월호는 이날 오전 11시20분 뱃머리 부분만 남긴 채 사실상 침몰했다. 해경은 12시47분 청와대에 “(사망자가)2명으로 확인됐다. 우리도 언론 보고 알았다”고 보고한 뒤, 오후 1시4분 “현재까지 생존자 370명이랍니다”라고 오보를 전했다.

 ◆대통령 보고에만 신경 쓴 청와대=사고 이후 청와대 관계자들의 관심은 ‘현장 지휘’보다는 ‘서면 보고’였다. 청와대 상황실은 오후 2시18분 “대통령에게 5분 뒤 보고해야 한다”며 구조자 수를 재촉했다. 해경이 “한 170명 정도 되겠네요”라고 하자 “보고서에 몇 명으로 들어가면 될 건지 지금 그거라도 넣어서 보고드려야 되니 빨리 확인해 달라”고 독촉했다.

  오후 2시36분, 해경이 생존자가 166명이라고 보고를 정정하자 청와대는 대통령 보고와 이에 따른 여파를 걱정했다.

 ▶해경=“166명 말씀드리라고 합니다.”

 ▶청와대=“어이구, 큰일났네.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보세요. 몇 명?”

 ▶해경=“166명입니다.”

 ▶청와대=“166명이라고요? 큰일났네. 이거 VIP(대통령)까지 보고 다 끝났는데. 거기도 (언론에)완전 잘못 브리핑 된 거네. 이거 여파가 크겠는데.”

 이에 우원식 의원은 “청와대가 실종자의 안위보다 대통령에게 잘못 보고한 것을 더 걱정하다니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사고 이튿날이 될 때까지 해군이 구조를 위해 입수하지 않은 것에 대해 “도저히 안 되는 모양인가 보네” “추측은 하고 있었는데 뭐, 구조요원들이 판단하는 거니깐요”라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특히 사고 발생 하루가 지나도록 현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언론을 탓하기도 했다.

 ▶청와대=“저기 부탁이 있는데요. 오늘 오전에도 우리 ‘실장님’이 보고하는 게 별로 마음에 안 드시는지…난리를 치셨거든요.”

 ▶해경=“어떤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청와대=“언론에 하도 XX같은 보도가 막 뜨니깐 뜰 때마다 막 바로 전화가 와요.”

 ▶해경=“네. 아니 왜 어떤 근거로 저런 보도가 나오는지 모르겠어.”

 녹취록에는 청와대 관계자의 구체적인 직급 등은 나타나 있지 않았다. 대화에 등장하는 ‘실장님’은 당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었을 것이라고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추정했다.

 최민희 의원은 “적어도 청와대는 가장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데 언론 보고 소식을 알고 대책 세우고, 언론이 보도하면 거기에 끼워 맞추고 있다. 청와대와 해경 모두 엉망”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특위에 출석한 김석균 해경청장은 “사고를 예방하지 못해 많은 분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고개 숙여 깊이 사죄한다”며 “세월호 침몰 사고 수습이 마무리되면 사의를 표하겠다”고 밝혔다.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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