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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신공'과 '수첩신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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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2014년 6월 세계배 대회를 위해 홍 감독이 준비한 비장의 무기는 ‘의리신공’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의리신공은 박주영·정성룡 등 특정 멤버끼리만 펼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이미 위력은 충분히 입증됐다. 2012년 런던 오륜기 대회, 홍 감독은 이 신공을 앞세워 대한민국 축구단에 사상 첫 세계 3위의 영광을 안겼다. 필승의 무공. 이때 홍 감독의 마음속엔 이미 의리신공에 대한 신뢰의 뿌리가 깊이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의리신공은 그러나 화합신공이나 실력위주신공과는 극성. 섞어 쓰기도 불가능했다. 한 번 의리신공에 빠지면 다른 무공은 익힐 수도 없고 쳐다보지도 않게 된다. 홍 감독은 그런 단점을 잘 알면서도 의리신공에만 의존했다. 의리신공엔 꼭 따라붙는 게 지킴이초식이다. 지킴이초식 없는 의리신공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홍 감독이 러시아전을 마치고 ‘수비형 공격수’ 박주영을 일컬어 “(수비수로서) 제 몫을 했다”고 했을 때, 알제리전 참패 뒤 “박주영이 균형을 잘 잡아줘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을 때 대한민국은 지킴이초식의 위력을 십분 실감해야 했다.

 지킴이초식은 홍 감독의 내공 ‘형님 리더십’과 불가분의 관계다. 형님 리더십이 바탕이 돼야 비로소 의리신공과 지킴이초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알제리전 참패 후에도 환하게 웃으며 후배들을 격려하고, 외부의 빗발치는 공격에도 의리신공을 밀어붙인 홍 감독의 뱃심에는 다 형님내공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어 가능했다. 하지만 벨기에와의 마지막 일전, 홍 감독은 의리신공을 결국 포기했다. 의리신공에 대한 빗발치는 비난이 부담이었을까. 박주영·정성룡을 뺐다. 그는 전투가 끝난 뒤 그 점을 무척 아쉬워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거취를 묻는 질문에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에 지배당하지 않는다”며 다소 생뚱맞게 답변을 했는데, 거기엔 마지막까지 의리신공을 지키지 못한 자신에 대한 질책이 담겨 있는 듯했다.

 홍명보의 월드컵뿐 아니다. 이런 극단적 희화와 풍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에도 똑같이 들어맞는다.

 2014년 6월 세월호 극복을 위해 박통이 준비한 비장의 무공은 ‘수첩신공’이었다. 수첩신공은 김기춘·최경환 등 특정 멤버에게만 펼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2012년 대권무림 대회, 박통은 이 신공을 앞세워 2대에 걸쳐 무림권좌에 앉는다. 필승의 무공. 이때 박통의 마음속엔 수첩신공에 대한 신뢰의 뿌리가 깊이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수첩신공은 그러나 국민대화합신공이나 대탕평신공과는 극성. 섞어 쓰기도 불가능했다. 한번 수첩신공에 빠지면 다른 무공은 쳐다보지도 않게 된다. 수첩신공에도 지킴이초식은 필수다. 연이은 인사 실패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경질 요구가 빗발쳤음에도 박통이 도로 정홍원 총리를 지명했을 때, 앞으론 인사수석실을 만들어 인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대한민국은 지킴이초식의 위력을 십분 실감해야 했다.

 지킴이초식의 뿌리는 ‘언니 리더십’이다. 자신이 지명한 총리 후보자의 낙마를 남의 일처럼 “안타깝다”고 말하고 의전 서열 10위까지 8명을 PK 인사로 앉힌 뱃심도 다 언니 리더십에서 나왔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로 박통은 수첩신공을 결국 포기했다. 수첩신공에 대한 빗발치는 비난·공격이 부담이었을까. 안대희·문창극을 총리에 지명했다. 그는 두 사람 낙마 후 그 점을 무척 아쉬워했던 것 같다. 박통은 ‘도로 정 총리’ 결정에 대해 “높아진 검증 기준을 통과할 분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는데, 거기엔 마지막까지 수첩신공을 지키지 못한 자신에 대한 질책이 담겨 있는 듯했다.

 홍 감독은 할 말이 있다. 역대 축구팀 패전 후 꼭 나오는 진단, 한국 축구의 척박한 환경이다. K리그는 프로야구의 인기와 비교조차 안 된다. 이만큼 한 것도 다행이다. 박 대통령도 핑계는 있다. 한국 정치의 한심한 수준이다. 패거리 문화와 승자 독식이 판치는 정치구도. 선진 정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이만큼 한 것도 다행이다. 그렇다. 그렇게 2014년 6월 대한민국 축구와 정치는 묘하게 닮아있었다.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