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세상읽기

권력의 위기, 경제의 위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김종수
김종수 기자 중앙일보 부장
[일러스트=강일구]
김종수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졌다. 잇따른 인사 실패로 여당마저 등을 돌리고 국정수행 지지율은 취임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문창극 총리후보의 타의에 의한 자진사퇴를 막아내지 못한 채 이미 두달 전에 사퇴의사를 밝힌 정홍원 총리를 유임시킨 고육책은 대통령의 리더십과 국정수행 능력에 심각한 의문을 불러 왔다. 취임한 지 1년4개월 만에 최대의 권력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리더십과 국정장악력의 실추에서 비롯된 권력의 위기는 다시 국정운영의 동력을 더 떨어뜨린다. 대통령의 영(令)이 서질 않으니 정책을 펴려 해도 말발이 먹히질 않는다. 대통령의 약세를 틈탄 야당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이고, 당권 경쟁에 눈이 팔린 여당은 대통령을 도울 여력도 열의도 없어 보인다. 국회의 지원과 동의가 없으면 대통령의 인사와 정책은 무력화된다. 권력의 미묘한 변화에 민감한 공무원들은 벌써 눈치 보기에 바쁘다. 이런 때는 공연히 앞장서서 일을 벌이기보다 적당히 자리보전에 힘쓰는 편이 낫다는 걸 직감적으로 안다.

 공공기관 개혁과 규제완화 등 야심 차게 밀어붙이려던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혁신 정책은 올스톱 상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두 달간 국정은 사실상 마비상태나 다름없었다.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뭘 해보려던 차에 벌어진 권력의 위기는 정책의 추진동력을 사그라뜨리고 있다. 집권 2년차의 첫 6개월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지나가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더 큰 위기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엄습하고 있다. 바로 경제위기의 조짐이다. 지난 2011년부터 시작된 경기 침체에서 회복되지 못한 채 다시금 주저앉을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경기침체의 연장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번에 경기가 재차 하락한다면 그 파장은 결코 만만치 않다. 이미 3년째 경기부진으로 진이 다 빠진 마당에 여기서 경기가 더 추락하면 다시 일어설 기력마저 소진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주기적인 경기순환의 하강국면에 접어들 뿐만 아니라 본격적으로 저성장구조가 고착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단기적인 경기침체와 구조적인 성장잠재력의 하락이 겹치면서 자칫하면 한국 경제가 재도약의 동력을 아예 상실할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여기다 가뜩이나 취약한 세계경제에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심각한 경제위기에 빠질 공산이 크다.

 이미 그런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4월에 이어 5월에도 생산과 소비가 줄고, 투자의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몇 개월 뒤의 경기전망을 보여주는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 1월 이후 줄곧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현재의 경기상황을 나타내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도 3월부터 내리막을 걷고 있다. 하반기 이후에는 체감경기의 부진만이 아니라 실제 경기가 급격하게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여기다 그동안 경제를 버텨 왔던 수출도 증가세의 둔화가 역력하고, 수출 증가에 따른 국내경제의 낙수효과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내수의 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수출의 성장 기여도마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판에 벌어진 권력의 위기와 그로 인한 국정추진 동력의 상실은 경제 위기를 부채질할 우려가 크다. 권력의 위기는 경제회생을 목표로 한 규제완화와 경기부양책을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게 할 것이고, 그로 인한 실망감은 경기하락을 부추길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는 다시 권력의 위기를 부른다. 경제적 성취는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정권에 대한 지지도와 강한 상관성을 갖는다. 경제를 살리지 못한 정권은 다른 모든 업적이 아무리 출중해도 결코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권은 권력의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박근혜 정부는 사태의 본질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올 들어 국정운영의 중심축을 경제민주화에서 경제 살리기로 고쳐 잡고, 구체적인 성장목표와 함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내놓은 것이 그렇다. 문제는 권력의 위기가 그러한 정책을 밀어붙일 추진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점이다.

 취임을 앞둔 최경환 경제팀이 직면할 최대의 난관이 바로 이것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힘을 실어준다 한들 대통령의 리더십과 권위가 약화된다면 새 경제팀이 추진하는 어떤 정책도 약발이 듣기 어렵다. 거꾸로 새 경제팀이 모든 악조건을 무릅쓰고 경제 살리기에 성공한다면 권력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국정운영의 추진동력을 얻을 수도 있다. 새 경제팀에게 부여된 과제는 그만큼 막중하다.

 거듭 말하지만 최경환 경제팀의 과업은 단기적인 경기부양과 중장기적인 경제체질 개선 및 성장동력 확충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둘 다 쉬운 과제가 아니다. 그러기에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기대가 더욱 크다. 그런데 취임도 하기 전에 부동산 금융과 관련된 LTV(주택담보인정비율)과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 완화 같은 지엽말단적인 사안을 두고 논란에 휘말린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한국 경제를 구원할 큰 그림과 확실한 정책구상이 필요한 때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