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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는 매뉴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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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손해용 기자 중앙일보 경제부장
구글 본사 수영장 중 하나. 물살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제자리에서 수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손해용
경제부문 기자

지난주 찾은 ‘이곳’의 11개 식당에선 특급 주방장이 만드는 전 세계의 진수성찬을 맛볼 수 있었다. 직원 본인은 물론 가족·방문객에게까지 공짜다. 신선한 과일과 음료수도 무제한으로 제공된다. 트레이너가 항시 대기하는 체육관과 수영장, 뭉친 근육을 풀 수 있는 마사지실·스파도 있다. 업무시간에 산책·일광욕을 즐기거나 사무실에서 애완견과 함께 일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이곳’은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 본사다.

 마냥 느슨하고 내키는 대로 일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직원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시간과 터를 마련하면 그들은 거기서 해답을 찾고, 상상 속의 것을 실제로 만들어 낸다”는 게 구글(메건 스미스 부사장)의 설명이다. 업무 집중도와 회사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생산성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구글 경영진은 잘 알고 있었다.

 이런 환경은 창의성을 끌어내는 기업문화로 이어진다. 구글의 회의는 항상 거침없는 질문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말단 직원도 경영진에게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개인 근무시간의 20%는 맡은 업무와 관계없이 자신이 해 보고 싶은 일을 해 보라고 권장한다. 이른바 ‘20% 프로젝트’를 통해 얻어지는 아이디어는 G메일·애드센스 등 혁신 사업으로 이어지곤 한다.

 구글의 경영철학은 간단하다. ‘자율’과 ‘개방’이다. 감시·통제가 없어도 인재들은 자신의 업무를 100% 수행하고, 창의성과 열정 그리고 주인의식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재들을 자연스럽게 만족시키는 이런 조직문화는 구글을 ‘혁신의 아이콘’으로 만들었고, 구글의 진정한 경쟁력이 됐다.

 마운틴뷰에서 만난 한 한국인 직원은 한국에서 기업 임원들이 방문할 때 꼭 던지는 말이 있다고 했다. ‘매뉴얼 같은 것은 없느냐’는 것이다. 구글의 겉모습만 보고 돌아간 한국 기업인은 구글 문화를 적용한답시고 고작 공짜 점심을 주는 게 대부분이다. 구글의 기업문화 속에 숨겨진 철학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 기업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힘이 빠진다고 했다.

 2011년 시작한 포브스 ‘세계 100대 혁신기업’에 지금까지 한국 기업이 이름을 올린 적은 전무하다. 이 순위가 혁신의 절대적인 잣대는 아니지만 한국의 기업문화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복잡한 보고체계, 상명하복, 조직 우선주의, 단기성과주의 등이 한국 기업의 현주소다. 상상을 해보자. 회의 때면 막내 직원이 경영진에게 자유롭게 자기 주장을 쏟아낸다.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자유롭게 출퇴근을 한다. 낯선 그림이다. 하지만 이런 그림이 자연스러워질 때 대한민국의 기업과 정보기술(IT)이 날개를 달 수 있을 것이다.

손해용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