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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부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인권과 재산의 최후 보루라 할 사법부가 사상 최악의 법관 부족으로 운영에 막심한 지장을 받고 있다는 소식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보도에 따르면 정원 6백40명중 결원이 무려 1백15명에 이르러 부족율은 18%에 달한다고 하며 특히 중견급인 지방법원 부장판사의 부족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법관부족 현상은 법관의 업무량을 크게 함으로써 담당사건을 소홀히 심리하게 할 우려가 있으며 결과적으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요청인 공정과 신속한 재판을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됨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이 문제는 단순히 사법부 내부의 인사문제로 돌릴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인권과 국민재산의 효과적 분배라는 차원에서 검토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는 건국 후 거의 만성적인 법관 부족현상을 보여온 게 숨길 수 없는 사실로서 ,법관증가율은 사건증가율을 항상 따르지 못했다.
참고로 각 국의 법관 1인당 인구를 비교하면, 한국의 5만9천7백명에 대해 영국은 2천7백41명, 미국 4천8백11명, 서독 4천l백67명, 일본4만1전9백 명 등으로 돼 있으며, 법관 l인당 연간 처리사건을 봐도 한국의5백48건에 대해 미국 2백80건, 일본1백29건 (민·형사사건, 1번의 경우)등으로 한국법관이 얼마나 심한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좀 더 통계를 인용해보면 66∼75년의 10년간 법관은 불과 13·2% 늘어난 데 비해 사건은 53·8%나 늘어 법관의 증원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그러나 이런 요청과는 반대로 지난 수년간 법관 이직현상이 두드러져 가뜩이나 부족한 정원에도 미달하는 운영을 감수하고 있어 국면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당국은 이 같은 부족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76년부터는 사법고시의「커트라인」제를 폐지하고 정원제를 채택하는 한편으로 합격자수도 60명, 80명으로 해마다 늘려 올해엔 1백20명까지 뽑았고, 내년엔 1백40명, 81년엔 1백60명을 뽑을 계획을 내놓은바 있다.
그러나 이들이 사법연수원 2년, 군복무3년 등 5년이 지나야 임관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아직도 상당기간이 지나야 다수채용의 실행을 기대할 수 있어 당분간의 부족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앓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무자격법관을 기용할 수도 없는 만큼 우선 행정적으로 법관업무를 덜어줄 방안과 법관 이직방지책을 강구하고 나아가 고매한 인격과 풍부한 식견을 쌓은 재야 법조계인사를 대담하게 기용하는 문제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법관업무를 덜어주는 방안으로는 우선 무엇보다 법원행정요원의 증원과 업무의 기계화 등을 생각할 수 있다. 방대한 소송기록의 정리, 관계서류의 분류, 각종 자료의 효율적 처리 등을 위해서는 아직도 법원의 행정공무원의 수가. 부족하고 그 사무처리방식 역시 개선의 여지가 많다고 본다.
법관의 이직현상은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겠지만 인사정체·처우불만·업무에 대한 보람상실 등이 주요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예컨대 고시동기로 행정부에 진출한 사람은 벌써 장관을 지냈는데 사법부에서는 고법부장으로 머물러 있다면 불만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장기대책으로는 법관공급을 대폭 늘리고 인사를 쇄신하는 한편으로 법관의 긍지와 보람이 보장, 신장되는 사법부의 기풍조성·처우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울러 작년에 거론된 법관정년의 연장문제도 시급히 추진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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