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삶과 믿음] 열정보다 냉정 필요한 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81호 31면

축축한 장마철에 고뇌에 찬 젊은이들이 땅끝에 모였다. 올해로 3회째 맞는 ‘청년출가학교’가 그것이다. 이름처럼 출가를 전제로 하진 않는다. 그저 벼랑 끝에 선 아슬아슬한 청년들이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찾는 프로그램이다.

해마다 지도법사로 참여하는 나는 그간 젊은이들의 눈물을 숱하게 보았다. 죽지 않고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며 서로 안고 운 청년들이 한둘이 아니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슬프게 하는가, 내게는 자문하고 자책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도 삶의 터전으로 돌아갈 땐 희망을 말한다. “스님, 이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게 뭐든지 다시 한번 해볼게요.” 그 말 한마디면 됐다.

어느덧 한 해의 절반이 지났다. 지난 반년 동안 우리 사회는 끔찍했다. 세월호 참사가 온 국민을 상주로 만드는가 하면, 옆 나라 일본의 치밀한 괴롭힘에 생채기는 덧났다. 최근에는 탈영병의 무차별 난사까지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로 인한 문제가 연일 쏟아진다. ‘무엇이 대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국민이라면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그만큼 감정도 상해 있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더미다. 그런데 정작 개선 노력은 부실하니 진실의 조각들은 어디에 쓰이는가.

“불치병을 앓는 사람이 한밤중에 아기를 낳고는 얼른 불빛에 비추어본다. 이유는 혹여 아기가 자기를 닮았을까 두려워서다.” 『장자』의 ‘천지(天地)’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자기는 그렇더라도 자식만큼은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세월호뿐 아니라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희생당한 사람 모두가 같은 심경이리라. 하여 온 국민이 지난 몇 달간 일그러진 사회 속에서 엄중한 자기성찰을 해왔다. 그러나 살아남으려면 다시 경쟁할 수밖에 없다고들 말한다. 이런 현실을 어찌할꼬. 사람들에게는 치유할 뭔가가 필요하다.

얼마 전 ‘소외이론’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의 연극 이론인데, 관객을 극에 몰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극으로부터 관객을 멀어지게 해서 극과 현실을 구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란다. 이 이론을 현실에 대입시킨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참담하고 힘겨운 시련들을 한 걸음 떨어져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감정에 휩쓸리지 않을 테니까.

지금 우리에겐 무엇보다 휴가나 여행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떠난다는 것 자체가 주는 홀가분한 기분이 우울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여행 가서 싹 잊고 오라는 것은 아니다. 고통스러운 현실과 거리를 두고 생각해보라는 얘기다. 소외이론이 말하는 것처럼 너무 밀착해 보지 말고 이 총체적 난국을 객관화시켜 볼 줄 알아야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다스릴 수 있기에 그렇다.

여행을 갈 형편이 안 된다면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마음의 거리를 두면 좋겠다. 이념이나 조직이나 정치적 이익을 떠나 몇 달간 계속되는 국가적 책임 규명 문제 등을 올 여름휴가 때는 객관적 시각으로 살펴보고 사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 외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잘 보고 더 멀리 보기 위해서다.

청년들도 자신의 인생을 내다보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이 먼 땅끝까지 왔다. 그런데 이들을 위해 내건 ‘내려놓고 바라본다’는 슬로건은 오히려 어른들에게 더 필요한 것 같다. 그러니 잠시 ‘소요유(逍遙遊)’ 하며 시대를 조망해보자. 길을 잘못 든 사람이 걸음을 재촉하는 법이다.



원영 조계종에서 연구·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아사리. 불교 계율을 현대사회와 접목시켜 삶에 변화를 꾀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