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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8)제63화 민주당 시대(38)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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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떤 사물에나 표면이 있고 이면이 있는 법. 역사적인 사건에도 흔히 밖으로 드러난 「스타」가 있는가하면 실제 영향력은 막후의 인물에게서 나오는 일이 많다.
장면 시대를 말하면서 김철규 신부와 한창우 전 경향신문사장을 빼놓을 수 없다는 얘기를 신파 사람들한테서 자주 들었다.
오위영 김영선씨 등의 실력자들 몰래 진산을 내무장관으로 발탁하도록 종용한 측이 바로 이들이었다. 이들은 장면 정권의 탄생에 큰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장면씨의 정계 진출서부터 제2공화국의 종막에 이르기까지 주요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신부는 현재도 서울의 어떤 성당에서 봉직하고있고 한 사장은 작년에 작고했다.
김 신부는 충남 당진 태생으로 독립운동가의 아들. 해방직후 노기남 주교의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 이승만 박사의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건국초기 천주교의 협조를 기대했던 이박사가 김 신부를 찾아내 정치에 참여할 것을 권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대신 당시에 동성학교 교장으로 있던 장면박사를 천거했다고 알려져 있다. 김 신부 자신은 막후에 있기를 원했다.
신파 사람들 얘기로는 김 신부가 오랜 「카톨릭」 조직생활에서 정치에서의 조직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신부로 있으면서도 정치를 통한 역사형성에 뜻을 가졌다.
김 신부의 관심사는 표면적인 정치현상 뿐 아니라 종교와 군대분야에까지 광범하게 미친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파 인사 중엔 장면 총리를 비롯해 「카톨릭」 신자가 많은데 김 신부의 막후활동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신·구파 사이에 대통령후보지명과 총리인준 등 큰 대결이 있을 때마다 신파 측에 「카톨릭」 개통의 자금이 공급됐던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7·29선거 때나 그 이전의 총선 때 신파 사람 중엔 김 신부가 대주는 구호물자 덕을 단단히 본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한창우씨는 충남아산 출신으로 독실한 천주교신자를 아버지로하여 태어난데다 장 총리가 다닌 수원농고를 다녔고 장 총리가 교장으로 있을 때 동성학교 교사로 있었다.
민주당 정권을 전후해서는 경향신문 사장을 지냈는데 자유당과 싸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은 민주당 정권 때 군 인사에까지 관여하는 등 정국의 추이와 떼어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이밖에도 정일형 외무장관부인 이태영 여사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경록 이한림 장도영씨 등 육군 수뇌급의 인사이동에 이들 막후인물이 깊이 관련됐고 따라서 장면 정권의 운명과도 연관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현석호씨, 국회국방위원장 이철승씨와 장도영씨 부인 등의 영향력이 컸던 것은 웬만큼 알려진 일이다.
1차 조각을 끝낸 후 장면 내각은 혁명의 열기를 반영하여 의욕적인 정책목표를 내 걸었다. 사회에 만연한 사회풍조를 일소하기 위해 장관들로부터 「골덴」 기지로 만든 국토개발 복을 착용했다.
외식과 요정출입 금지를 다짐하는가하면 장 총리 자신부터 도시락을 지참하여 출근했다.
대대적인 국토개발을 계획, 장준하씨를 본부장에 임명하여 개발에 착수했다.
많은 자금을 살포하여 우선 민생을 안정시키는데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다.
장 총리는 『나는 총소리를 듣고 집권을 했지만 내가 물러날 때는 총소리를 듣지 않고 평화적으로 물러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측근들에게 의욕을 과시했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게 순탄하지 못했다. 신정권이 출범한지 1주일만에 민주당 구파가 별도의 원내교섭단체를 만들어 등록해 원내기반을 불안하게 만들어놓았다.
각종 정당·사회단체들이 우후죽순같이 만발하여 별의별 주장을 다하고 나섰다. 같은 신파 소장들의 압력과 불만불평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원내기반을 불안케 하는데 이들 역시 크게 가세한 셈이다.
오랫동안 야망생활을 해온 당원들의 관계 진출희망이 대단했다. 각 도당이 중견당원들의 희망사항을 취합한 것을 보면 거개가 다 행정부진출을 바라는 아우성이었다. 국회의원에 한번 입후보만 했던 사람이라도 최소한 차관급 아니고는 협조할 수 없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뿐인가, 장관들은 선거구민들의 취직이다 뭐다 시달려야했다.
구파에서는 별도교섭단체에 이어 분당론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런 내외의 어려운 현실을 타개해 보려는 데서 신파의 홍익표 내무 현석호 국방 이태용 상공 오위영 사무처 등 4부 장관이 사표를 낸 모양이었다. 이들이 낸 9월7일자 사퇴 성명요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장 내각이 성립된 이래 하루속히 정국이 안정될 것을 기대했으나 민주당 원내 양파의 상극이 가중되고 책임내각제의 정치과업완수에 지장이 불소함을 통감했다. 오인은 차제에 거당 내각을 구성하여 정국을 조속히 수습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사퇴한다』고-.
이에 따라 장 총리 초청으로 백남당 곽상훈 박순천 최고위원회담이 반도 「호텔」에서 열리고 구파에서는 의원총회에서 강·온의 격렬한 논란이 일어났다.<계속>【정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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