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의 「팔」분할이 불씨… 30년간 4차례 사활전치른 「불안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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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집트」와「이스라엘」간의 30년관계는 네차례의 큰전쟁을 포함하여 불신과 적대로 점철된 피의 역사다.
1천8백여년의 방랑끝에 고향에 조국을 건설하겠다는 유대인의꿈은 실현됐지만 그대신 수많은「팔레스타인」인이 고향을 잃었다.
▲47년11윌29일-65년동안에 걸친 「이스라엘」이민이 특히「나치」독일의 박해와 함께 급증, 유대인 국가건설이 현실문제로 대두되자 「유엔 」총회는 영국위임통치를 종식시키고 「팔레스타인」에 유대및 「아랍」국가를 창설하기 위한 「팔레스타인」분할안을 채택했다.
그러나「이스라엘」이 분할안에 찬성한데 비해 「아랍」측이 이를 거부함으로써 두 민족간의 전투가 치열해졌다.
▲48년5월14일 = 영국군철수와 함께「이스라엘」의 잠점국먼의희가 독립을 선언한 다음날 7개국「아랍」연합군이「팔레스타인」에 진입함으로써 독립전쟁(1차중동전)이 발발했다.
그러나 이전쟁으로「이스라엘」은 당초「유엔」분할안에 명시된것보다 훨씬 넓은 영토를 장악했으며 75만명에 이르는 「팔레스타인」인이 고향을 잃게됐다.
▲56년7월26일 =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한「낫세르」「이집트」대통령은 소련으로부터 대규모 군사원조를 얻어「이스라엘」을 계속 위협. 56년10윌26일 영·불연합군이 「수에즈」운하에 대한 기습공격을 감행할때 「이스라엘」군도「시나이」반도를 점령(2차중간전)했으나 미·소의 압력으로 철수하고 양국국경에「유엔」군이 배치됐다.
▲67년6월5일 = 「이집트」가「아카바」만을 봉쇄하고 군대를 국경으로 이동하는데 자극받은 「이스라엘」은 선수를 쳐서 「이집트」를 강타했다.
6일전쟁으로 불리는 3차중동전을 통해「이집트」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으며 「이 스라엘 」은「시나이」반도를 비롯, 「시리아」의「골란」고원과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강서안을 점령했다.
▲67년11월22일 = 「유엔」안보이사회는「아랍」세계가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인정하는대신「이스라엘」은 점령지역으로부터 철수할 것을 촉구한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으나「이스라엘」이 점령지철수를 거부.
▲73년10월6일 = 「이집트」가「수에즈」운하를 넘어 「시나이」반도로 진격하고 시리아」는 「골란」고원을 공격함으로써 4차 중동전 발발.
초기에「이스라엘」군의 상승신화를 깨뜨린 이 전쟁은 그러나「이스라엘」군이「다마스커스」를 위협하고「수에즈」운하를 건너 「이집트」영내로 진입하자 휴전이 성립됐으며 2년동안의 협상끝에 75년9월4일 양국은「제네바」에서 휴전협정에 조인.
▲77년11윌19일 = 「사다트」「이집트」대통령이「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철수한다면 평화를 이룩할 준비가 돼있다고 선언.
▲78년 9월17일 = 「카터」대통령과 「사다트」「이집트」대통령 및 「베긴」「이스라엘」수상이 명화의 원칙에 합의한「갬프데이비드」협정에 서명.
▲79년 3월26일-「카터」대통령의 극적인 중동순방의교가 성공, 3국정상은「워싱턴」에서 역사적인 「이집트」-「이스라엘」평화조약에 서명했으나 「아랍」세계의、반발로 중동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U P I 동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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