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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피지기(知彼知己) … 아는 것만 한다, 부동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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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

양현석(45) YG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연예계의 손꼽히는 부동산 부자다. 올초 한 조사에 따르면 그는 이수만·서태지에 이어 연예계 빌딩부자 3위였다. 톱스타의 부동산 투자, 사실 이젠 너무나 식상한 이야기다. 그런데 양현석은 좀 다르다. 다른 연예인들이 이른바 ‘투자의 정석’에 따라 강남이나 신도시에 투자할 때(※연예인 빌딩부자 10위 순위를 보면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강남 부동산으로 재미를 봤다) 그는 강북, 그것도 부자동네도 아닌 합정동과 서교동만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투자 이후 이 지역은 상권이 살아나며 부동산 값까지 껑충 뛰었다. 논현동을 접수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나 회나무길을 장진우거리로 만든 장진우 대표처럼 본인이 원하는 컨셉트의 가게를 하나 둘씩 내면서 낙후된 골목길을 핫한 상권으로 키워낸 건 아니지만, 그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동네를 완전히 탈바꿈시킨 셈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주변의 얘기를 들어봤다.

많은 연예계 스타가 그렇듯 양현석 역시 여유있는 집 자식은 아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으로 돈을 벌어 산 그의 생애 첫 부동산은 1994년에 구입한 연희동 단독주택. 하지만 본격적인 부동산 투자는 2004년 시작했다. 그는 이때부터 서교동, 흔히 홍대앞으로 불리는 지역과 YG사옥 주변 합정동 일대 부동산을 다녔다. 특별히 뭘 사려거나 시세를 확인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이 부동산에서 저 부동산으로 매일 마실 가듯 어슬렁거렸다. 그렇게 그 지역 부동산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 합정동 행운부동산 조춘식(74) 이사는 “양현석은 부동산을 꾸준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본인도 2012년 한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8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부동산에 갔다”며 “부동산 사람들과 3500원짜리 김치찌개를 먹으며 친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연예계 마당발로 통하는 개그맨 남희석(43)은 “양현석과 친하지는 않지만 항상 옆에서 그를 보며 늘 성실하다고 생각했다”며 “연예인뿐 아니라 다들 놀기 좋았던 시절인 1990년대에도 그가 논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조금만 떠도 연예인병이 도져 노느라 흥청망청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는 1996년 합정동에 기획사를 차려 차곡차곡 연예계에 입지를 다지는 한편 현장에서 부동산 공부를 했다. 그리고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서교동에서 매년 한두채씩 작은 건물을 샀다. 외환위기에서 서서히 벗어나 급락했던 부동산값이 오르며 다들 강남 부동산에 눈길을 돌렸지만 그는 달랐다. 어려서부터 익숙한 서교동과 합정동을 떠나지 않았다.

양현석이 2007년 경매로 나온 여관을 리모델링한 합정동 YG사옥(위)과 조각 건물을 모아 병풍처럼 이은 홍대 앞 삼거리 포차 빌딩(아래).

양현석과 그의 동생 양민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오랜 지인인 공연 매니지먼트사 블루스테이지의 정회진(45) 대표는 “양현석은 자기가 아는 것만 한다”며 “부동산 투자도 마찬가지”라고 얘기했다. 그는 “본인이 잘 모르는 강남에 기웃거리 않은 것은 물론 ‘어디가 뜬다더라’며 투자하라는 주변 얘기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신 아무도 관심없던 후미진 곳(서교·합정동)을 찾아갔다”고 덧붙였다.

사실 홍대앞은 1990년대 초반부터 이미 꽤 이름난 상권이었다. 하지만 양현석은 잘 나가는 메인 상권에 주목한 게 아니다. 정 대표 말대로 후미진 곳의 작은 조각 건물을 차곡차곡 사모았다. 삼거리포차로 유명한 삼각형 땅은 그가 2004년부터 8년여에 걸쳐 차례로 샀다. 이 일대 부동산의 한 관계자는 “2005년에 양 대표가 이 땅을 살 때만 해도 평당(3.3㎡당) 3200만원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그 주변 땅이 다 평당 1억원에 거래된다”고 말했다. 개별 건물로는 별로 투자가치가 없어 보이지만 이 건물들을 유리나 시멘트로 이어 거대한 병풍처럼 만들어 가치를 높였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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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신문에는 합정과 홍대 ‘골목대장’ 양현석 눈에 띄려고 낸 맞춤형 광고가 실렸다.

최근 한 신문엔 ‘양현석 대표님~ 홍대 건물 하나 사주세요 건물주 직통 01X-XXX-XXXX’라고 쓴 작은 광고가 실리기도 했다. 양현석이 홍대앞에 주목해온 걸 알고 아예 신문에 대놓고 타깃 광고까지 한 것이다. 이 광고주는 “양현석이 보게 하려고 광고를 했다”고 말했지만 실제 그가 전화를 해왔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사실 합정동도 양현석의 영향력이 큰 동네다. 건물 지하 단칸방을 세 내 기획사를 처음 시작한 1996년부터 터를 잡아 지금까지 합정동을 벗어나지 않았다. 강남에 즐비한 대형 연예기획사 소속 연예인들도 다들 부러워하는 지금의 YG사옥은 2007년 경매에 나온 걸 사들여 개조한 거다. 불과 7년 전이지만 주민들이 이곳을 “우범지대에 가까웠다”고 회상할 정도로 그다지 좋은 동네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것이 사옥 터가 원래 방음벽 바로 아래 저지대에 있는 합정장여관 자리였으니 말이다. 소유주가 당뇨로 사망하고 가족 간에 재산싸움이 벌어져 결국 경매에 넘어갔고, 그걸 양현석이 잡은 거다.

방음벽 옆 후진 여관은 양현석의 손을 거쳐 합정동의 랜드마크로 다시 태어났다. 또 사옥 뿐 아니라 자택도 합정동에 짓는 등 이곳에서 부동산 투자를 계속 하고 있다.

합정동 태양부동산 한정희(55) 실장은 “이 주위 건물은 다 낮은데 양현석은 이 건물을 지상 7층 높이로 올려 한강과 여의도가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며 “YG사옥 입주 후 이 건물뿐 아니라 동네 전체가 환해졌다”고 말했다.

과장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서울의 평균 공시지가(-2.14%)는 물론 합정동이 속한 마포구 가격도 떨어졌다. 하지만 같은 해 합정동만은 3.3%나 올랐다. 이후 상승률도 유독 높다. YG효과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기획사인 YG가 이곳에 터를 잡으니 스타제국과 컬투 등 여러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이곳으로 따라 들어왔다.

YG사옥 근처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이종석(54)씨는 “이 동네는 외환위기 이후부터 술집도 안될 만큼 죽어있는 상권이었다”며 “지금은 식당이 많을 뿐더라 북적인다”고 말했다. 카페를 하는 차대열(61)씨도 “YG소속 한류 스타를 보러 온 외국인 관광객이 매장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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