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커버스토리] 승부수를 던졌다 골목이 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합정동을 강남마저 부러워하는 동네로 만든 양현석, 강남 한복판에 있지만 썰렁하기만 했던 논현동 골목을 모든 음식이 다 있는 먹자골목으로 만들어 사람을 끌어모은 백종원, 서른도 안된 나이에 자기 이름 딴 거리가 있는 장진우 등 …. 우리는 이들을 골목을 살린 골목대장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들 골목대장은 어떻게 골목을, 아니 주변 상권을 키워 땅값까지 들썩이게 만들었을까요. 한번 파헤쳐 봤습니다.

어떻게 골목대장이 됐나

『장사는 목이고 목은 돈이다』라는 창업 관련 서적이 있다. 장사에 있어 그만큼 목이 중요하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강남역이나 명동 등이 대표 상권으로 자리잡은 데도 ‘목’, 다시 말해 교통 편하고 사람 많이 지나다니는 번화한 위치가 큰 역할을 했다. 그러니 새로 가게를 내는 초보 자영업자일수록 이런 좋은 상권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무도 관심갖지 않던 외진 골목길에 주목해 컨셉트가 분명한 매장을 잇따라 내면서 아예 주변 동네 전체를 핫한 상권으로 키운 사람들이 있다. 논현동 먹자골목과 강남역 언덕길, 경리단길 장진우거리 등 요즘 뜨는 거리의 ‘골목대장’을 만나봤다.

‘외식업계 신화’라고도 불리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사진 더본코리아]

오기(傲氣), 적자 보며 버텼다 성공할 때까지
백종원, 깡다구로 논현동 먹자골목을 만들다

소유진의 남자, 요식업계 미다스의 손. 백종원(48) 더본코리아 대표를 가리키는 다양한 수식어다. 배우 소유진과의 결혼으로 더 유명해지긴 했지만 사실 그는 이미 1990년대부터 논현동 바닥에선 유명했다. 썰렁했던 이 골목에 1993년 쌈밥집을 시작으로 고기집·중국집·카페 등을 연이어 내 괴짜로 불리기도 했다.

백 대표는 “지금은 얼굴이 많이 알려졌지만 그전에는 내가 옆에 앉아있어도 누군지 모르고 손님들이 ‘이 주변 가게는 백종원이란 사람이 다 한대’라고 수근거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장사꾼들 사이에서도 ‘백종원 거리’로 통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 이곳에 새로 문을 연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주인이 ‘백 대표님, 제가 왔습니다’라는 현수막까지 골목에 내걸 정도였다. 백 대표는 식당 수십 개가 있는 이 골목에서만 15개 음식점을 운영 중이다. 보통 식당이 잘 되면 별관을 짓거나 다른 지역에 지점을 내지만 그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음식점을 한 골목에 차례차례 계속 냈다. 지금이야 사람이 북적이지만 당시만 해도 찾아오는 사람 찾기 어려웠던 골목에 말이다. 논현동과 각별한 인연이라도 있을 법 하지만 그는 “우연한 만남, 그리고 단순한 오기”라고 말한다. 우연이라니, 그리고 오기라니. 무슨 말일까. 우선 그의 오기부터 한번 살펴보자.

논현동 먹자골목. 맨 왼쪽이 최근 구입한 ‘본가’ 건물이고, 오른쪽 ‘절구미집’이란 간판이 붙은 곳은 백종원 대표의 첫 식당 ‘쌈밥집’자리다. 지금은 바로 맞은편으로 옮겨 운영하고 있다. 셋 모두 백 대표가 운영하는 식당들이다. 김경록 기자

흔히 장사가 잘돼 돈을 벌면 더 좋은 상권으로 옮기겠다고 생각할텐데 그는 그냥 자신의 가게가 있는 주변으로 사람을 끌어오기로 마음먹었다. 본인 식당은 물론 이 거리 자체가 맛집골목이라는 인상을 줘야겠다고 마음먹은 거다. 이 말만 들으면 재미삼아 가게를 내도 될 만큼 재력이 탄탄하거나 주변 땅과 건물을 죄다 소유한 건물주인가 싶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가게 하나 낼 때마다 사채까지 끌어다써야 했을 정도로 여유가 없었다.

그는 “돈이 충분치 않아 사채로 가게를 열고, 그걸 다 갚을 즈음 또 새로 사채를 얻어 새 가게를 내곤 했다”며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위험한 투자였지만 그 땐 그 거리에 사람을 끌어모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학재단 후계자지만 부모에게 손을 벌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명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가게 문 열 때마다 곧바로 성공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 역시 사실이 아니다. 처음부터 돈 번 가게는 첫 가게인 쌈밥집과 2009년 낸 한신포차 밖에 없다. 나머지 13개 식당은 모두 1~2년 정도 적자를 보면서 버텼다.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 역시 그냥 오기였단다. 지금 운영하는 식당 15개는 그렇게 살아남았지만 실패해 문 닫은 식당도 여럿이다.

이렇게 무모한 오기로 시작했지만 성공과 실패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결국 확신으로 바뀌었다. 제대로 된 컨셉트의 식당이라면 일정 기간만 버티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신 말이다. 백 대표는 그때 깨달은 게 또 있다고 했다. “이렇게 안 좋은 상권에서 살아남은 브랜드라면 전국 어디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거다. 경쟁력이 있다면 ‘목’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깨달음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백 대표가 식당을 예닐곱 개 하던 2000년대 중반 즈음 그의 식당 주변에 이런저런 식당과 술집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을 모으겠다던 그의 오기가 현실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특색 있는 먹자골목을 만들자고 또 마음 먹었다. 보통 먹자골목은 잘되는 음식을 중심으로 비슷한 식당이 몰려 있다. 하지만 백 대표는 그 골목에 없는 음식 위주로 식당을 계속 새로 냈다. 중국집·치킨집·국수집…, 이런 식으로 구색을 맞춰나갔다.

메뉴는 모두 달랐지만 백 대표 식당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있다. 싼 가격이다. 예컨대 새마을식당의 7분돼지김치는 1인분에 5000원, 홍콩반점 짬뽕은 한 그릇에 4000원, 미정국수 멸치국수 한 그릇은 3000원이다.

그가 이렇게 싸게 파니 주변 식당도 따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주변엔 가격경쟁력이 뛰어난 좋은 브랜드 식당만 살아남았다.

“원래 저렴한 가격대 음식점이 즐비하니 새로 가게 냈다고 비싸게 받는 식당은 버티기 힘들죠. 그러다보니 ‘백종원이 싼 가격으로 이런 음식을 팔고 있으니 나는 비슷한 가격으로 다른 음식을 팔아봐야겠다’는 사람이 하나둘씩 늘더라고요. 그게 결과적으로 이 골목 특징이 됐어요. 사람들은 이제 논현동 먹자골목에 가면 싸고 다양한 음식을 맛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전략은 지금도 유지합니다. 새 브랜드를 계속 만들지만 여기서 잘 되는 음식은 절대 안 건드려요. 그래야 다 같이 살 수 있으니까.

자, 이번엔 우연. 장사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는 만큼 처음부터 장사에 뜻을 둔 사람같지만 사실 백 대표가 여기서 음식 장사를 하게 된 건 순전히 우연 같은, 그러나 필연일 농담 한마디 때문이었다.

군 제대 후 그는 1992년부터 인테리어 업체가 몰려있는 논현동에서 인테리어 업체를 하고 있었다. 사무실 낼 때 알게 된 부동산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러다 농담으로 “좋은 식당 자리는 없냐”고 물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덜컥 좋은 쌈밥집이 나왔다고 연락이 온 거다. 생각없이 내뱉은 말이었지만 농담이었다고 차마 말할 수 없어 가게를 보러가기는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식당 주인이 제시한 권리금이 너무 비쌌다. ‘이 핑계를 대고 가게를 인수 안하면 되겠네’싶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는 수중에 돈이 없다며 확 낮춰 불렀다. 그런데 다음날 백 대표가 터무니없이 낮춰부른 값에 가게를 팔겠다고 연락이 온 거다. 백 대표는 1993년 그렇게 외식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식당을 운영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평소 음식에 관심은 많았다. 그는 인수한 쌈밥집에서 흔히 쓰던 막된장 대신 된장을 볶아 내고 메뉴를 과감하게 정리하는 등 사업감각을 발휘해 처음부터 돈을 많이 벌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그의 꿈은 건축업이었다. 식당에서 돈 벌어 건축사업에 보태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2년 만에 소고기집을 하나 더 냈다. 요행이 벌어다준 돈이 이게 전부인 듯 싶었다. 1998년 외환위기가 닥쳐 순식간에 빚만 17억원 안고 건축사업을 접어야 했다. 당시 그에게 남은 건 쌈밥집 하나. 그는 “다행이란 생각보다 평생 식당아저씨로 살아야 한다는 절망감이 더 컸다”고 그때를 돌이켰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발상의 전환을 한다. 잘 굴러가는 쌈밥집을 보며 식당도 큰 사업으로 키울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발견한 거다. 그리고 정말 실내 포장마차인 한신포차가 대박이 났다. 빨리 재기해야겠다는 욕심에 분당에 지점을 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거리가 멀어 매장 관리를 하기 어려웠다. 그가 직영 대신 프랜차이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다.

현재 백 대표는 전국에서 20여 개 브랜드 500여 개 프랜차이즈점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중국·일본 등에도 40여 개 식당이 있다. 이중 21개만 직영이고 나머지는 전부 프랜차이즈다.

한편에선 성공한 사업가로 인정받지만 다른 한편에선 조미료 덩어리 싸구려 음식이라는 손가락질도 받는다. 이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백 대표는 “싼 음식이 가능한 건 주인이 수익을 적게 가져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라며 “지점장 교육을 할 때마다 ‘많이 가져갈래, 오래 가져갈래’라고 묻는다”고 했다.

원하는대로 골목 하나를 특색있는 상권으로 키워낸 그는 지금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일반인을 위한 실전조리학교를 세우는 거다. 우연과 오기는 그에게 또 어떤 성과를 가져다줄지, 좀더 기다려볼 일이다.

글=안혜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