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충기 부장의 삽질일기] 쥔장은 닭을 잡고, 나는 낫을 갈고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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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둑에서 낫질을 하는데 돌부리가 툭툭 걸린다. 사월부터 밭에서 골라낸 돌들이다. 멀리 던지지 않고 놔뒀더니 쑥쑥 자라는 풀숲이 얘들을 가려버렸다. 낫을 통 손을 보지 않아, 그렇잖아도 무뎌진 날이 군데군데 이가 빠졌다. 무쇠로 만든 조선낫은 쇠가 두툼하고 묵직하다. 왜낫은 쇠가 무르고 가볍다. 힘 좋은 조선낫은 굵은 나뭇가지를 쳐내기에 딱 좋고, 하늘대는 풀 깎는 데는 왜낫이 제격이다. 밭 한쪽의 수돗가에 낫을 던...져놓고 쥔장을 찾아갔다.

나: 아자씨, 거시기 있잖유.
쥔: 거시기가 뭣이래요.
나: 아니 거시기 뭐시냐, 돌멩이 있잖유, 그랴 숫돌... 그거 잠 내놔봐유.
쥔: (한참을 생각하다가) 없는데요.
나: 아니 농사짓는 집이 어치케 숫돌이 대유.
쥔: ......

식탁 뒤에 수그리고 앉아 일을 하고 있는 쥔장이,
- 글쎄...하며 팔을 드는 순간 반짝이는 머리 위로 뭔가가 번쩍했다.
- 그게요...다시 한마디 하는데 쾅쾅쾅쾅 소리가 났다.
가까이 가 보니 도마 위에 닭 십여 마리가 쌓여 있다. 쥔장은 나를 쳐다도 보지 않고 정육점용 칼을 부지런히 휘둘렀다. 이럴 땐 더 세게 나가야해.

나: 더듬지 말구 말을 해봐유. 여그는 낫을 안 쓰는규? 낫은 안 쓰구 농약으로 죄다 해결을 하는규?
쥔: 아니 그게 그것이...
나: 집이서 쓰는 칼두 안 갈어유? 그 닭 자르는 칼은 어치케 간대유?
쥔: 그러니까 그 뭣이냐...
나: 일 슈. 나 갈튜.

홱 돌아서 나오는데

쥔: 자, 잠깐만요.
나: 왜그류?
쥔: 여기 있네요.

쥔장이 어느 구석에서 거미줄 덮힌 숫돌을 찾아 내놓는다.

나: 이기 벽돌 아뉴?
쥔: 아 숫돌 맞다니까요.

쥔장은 다시 닭 모가지를 쾅쾅 내리치고, 나는 샘가에 앉아 슥슥 낫을 간다.
돌이 제 몸을 갈아내자 낫이 빛나기 시작한다.
날은 뜨거운데 쇠 날은 서늘하다.

안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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