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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지 않으면 죽겠구나 … 64년 지나도 악몽 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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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손주형(81·사진·개명 전 손용길) 대한학도의용군전우회 회장은 얼마전 침대에서 자다 떨어져 왼쪽 손목에 상처가 생겼다. 6·25 때 북한군과 포항여자중학교 인근에서의 전투 장면이 꿈에 나타나 몸부림을 치다 침대에서 굴렀다. 64년이 지났지만 17세의 나이에 참전했던 그의 전투 경험은 자랑스러운 기억인 동시에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다.

손 회장은 경기중 시절이던 1950년 7월 26일 피란지인 대구에서 대한학도의용군 1기로 자원 입대해 전장으로 향했다. 그는 “대구에 피란을 갔다 학도병을 모집한다는 격문(포스터)을 봤다”며 “학교 다닐 때 김일성 때문에 통일이 안 되니 싸워 이겨야 한다는 반공교육을 받은 영향으로 김일성과 싸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서를 내고 전쟁터로 갔다”며 참전 배경을 설명했다. 전쟁터가 무서웠지만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겠구나”라는 생각에 M1 소총 방아쇠를 당겼다. 손 회장은 50년 8월 11일 11시간30분 동안 북한군과 교전하며 남진을 지연시켰던 포항여중 전투에서 옆구리 관통상을 입었다. 그는 “당시 군의 장비나 체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학도병들이 없었다면 북한군의 남진이 빨라져 부산까지 쉽게 점령당했을 것”이라며 “북한군의 남진을 막았으니 반격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학도병들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40년이 넘은 낡은 시계를 차고 다닌다. 청와대를 상징하는 봉황이 새겨진 기념시계다. 그가 경찰에 재직 중이던 76년 대통령 표창 부상으로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서 직접 받은 시계였다. 86년 스위스 롤렉스 시계 본사를 방문했을 때 각국 대통령 기념시계를 수집하는 롤렉스 시계 사장으로부터 기증을 제안받았다. 자사에서 생산한 시계 중 원하는 것을 주겠다는 조건부였지만 거절했다. 자신이 피로 지킨 대한민국의 봉황을 간직하겠다는 이유에서다.

전우회원 가운데 사망자가 늘어나며 2000여 명 규모로 줄었다. 가족들도 전우회 활동을 접으라는 권고가 이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전우회의 존재를 알리고 경험을 나눠야 국가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젊은이들이 나설 것이란 기대와 명예회복을 위해 남은 생을 바치겠다고 했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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