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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화요일] 휴머노이드 로봇의 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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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페퍼(左), 아틀라스(右)

#1. 유튜브 영상이 실험실 안을 비춘다. 성인 남자 모습의 로봇이 거친 돌밭길 위를 거침없이 걷는다. 걸음걸이가 흡사 돌밭 위를 과감하고 날래게 행군하는 군인 같다. 잠시 뒤 한쪽 발을 들어올린 이 로봇 옆구리에 20파운드(약 9㎏)라고 쓰인 공이 날아와 부딪친다. 넘어질 듯 사람처럼 두 팔을 위아래로 휘젓더니 이내 균형을 잡아낸다.

 #2. 또 다른 실험실 안. 러닝머신 위에서 두 발 달린 로봇이 달리기를 시작한다. 러닝머신이 속도를 내자 두 발 로봇의 발걸음도 같이 빨라진다. 순식간에 속도가 올라가고, 로봇의 두 발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뛴다. 영상 오른쪽에 띄운 속도계는 시속 46㎞에 달했다. 100m 달리기를 7.8초에 주파하는 속도다. 인간이라면 육상 신기록이다.

 첫째 로봇의 이름은 아틀라스, 둘째 로봇은 랩터다. 아틀라스는 지난해 12월 구글이 인수해 화제가 됐던 미국 로봇제작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군사로봇, 랩터는 국내 KAIST의 김수현(기계공학과) 교수팀이 지난달 23일 공개한 2족(足) 로봇이다. 로봇의 진화가 빨라지고 있다. 단순히 사람이나 동물의 동작을 흉내 내는 수준을 넘어 사람 이상의 균형감각을 보이고 웬만한 맹수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됐다. 더 이상 ‘장난감’이 아닌 ‘실전투입’ 수준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글로벌 로봇산업의 대표적인 업체가 보스턴다이내믹스다.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출신인 마크 레이버트가 1992년 설립한 회사로, 인간이나 동물의 동작을 흉내 내면서도 탁월한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로봇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같은 특장점 덕분에 그간 미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의뢰를 받아 군사용 로봇을 발전시켜왔다. 아틀라스는 위험한 전쟁터에서 군인을 대신하기 위해 개발됐다. 이 회사가 2012년 9월 공개한 4족 로봇 ‘치타’는 재빠른 동작을 이용해 적의 동정을 살피는 것이 목적이다. 당시 공개한 동영상에서 치타는 최고 시속 46.7㎞의 속도로 달렸다. 민간 정보기술(IT) 기업인 구글은 보스턴다이내믹스뿐 아니라 인더스트리얼퍼셉션·메가로보틱스 등 7개의 로봇기업을 더 인수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도 ‘로보넛 ’이란 이름의 인간형 로봇을 개발해왔다. 지난해 10월 개봉한 영화 ‘그래비티’에서 보듯 장비 수리 등을 위해 위험한 우주 유영을 해야 하는 우주인을 대신하기 위해서다. 황금색 투구에 근육질 몸매를 한 이 로봇은 지난 3년간 두 팔과 다섯 손가락으로 사람처럼 우주선 외부를 정비해왔다.

 일본도 로봇산업이라면 미국 버금가는 수준이다. 인공지능을 접목해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시도를 한다는 측면에서는 되레 미국을 앞선다. 이달 5일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도쿄에서 공개한 ‘감정로봇’ 페퍼는 일본 로봇산업의 방향을 말해준다. 소프트뱅크에 따르면 페퍼는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를 분석해 감정 상태를 추정하고 그에 맞춰 적절한 대화를 할 수 있다. 또 각 가정이나 사무실에 배치될 수십만 대의 로봇과 클라우드를 통해 경험을 공유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똑똑해진다. 페퍼는 다리 대신 바퀴를 달아 움직인다. 대당 200만원 수준의 공급가를 맞추고, 실제 생활에서 넘어지지 않는 안정성을 갖추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다. 2000년 처음 세상에 나온 혼다의 아시모는 이제 시속 9㎞로 달릴 수 있고, 종이컵을 구기지 않고 쥘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해졌다.

 한국 역시 로봇에선 선진국 대열에 낀다. 아시모보다 4년 늦은 2004년 KAIST 오준호 교수가 만든 휴보는 아시모를 부지런히 쫓아가고 있다. 걷고 뛰는 것은 물론 몸을 비틀며 춤까지 추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8월에는 구글의 루빈 부사장이 직접 KAIST를 방문해 휴보 두 대를 구입해갔다.

 KAIST 김수현 교수팀의 ‘랩터로봇’은 백악기 육식공룡 밸로시랩터를 모방했다. 키는 대략 47㎝, 무게는 3㎏의 소형 로봇이지만 고속 주행을 하면서 다리와 꼬리를 이용해 균형을 잡을 수 있 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김문상 지능로봇사업단장이 2011년 만든 로봇 ‘실벗’은 페퍼의 한국판 선배 격이다. 얼굴을 인식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등 30가지 이상의 지능형 소프트웨어 기술을 탑재했다. 노인들과 말벗이 돼주고 치매예방을 돕는다. 이미 병원과 치매지원센터 등에서 활용되고 있고 이달 초부터 일반인들에게 판매도 시작했다. 하지만 페퍼보다 값이 10배는 비싸, 별도의 마케팅이나 지원 없이는 판매가 쉽지 않아 보인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박병원 미래연구센터장은 “인간형 로봇기술이 왓슨과 같은 인공지능 기술과 융합할 경우 과학소설 에서처럼 인간을 훨씬 뛰어넘는 로봇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형 로봇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 인간의 삶은 어떻게 될까. 편리하고 안전한 삶이 열릴 수도 있지만, 로봇에 일자리를 뺏기고 존재를 위협받을 수도 있다. KIST 김문상 단장은 “실벗처럼 고령화에 대응하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아동을 위한 교육 등 생활 속에서 로봇이 인간을 도울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 뉴욕대 개리 마커스(심리학) 교수는 “앞으로 20년 후에는 로봇이 대부분의 서비스와 제조업 업무를 대체할 것”이라며 “당장 구글의 무인자동차가 상용화되면 택시기사는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준호·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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