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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2년, 야당에 더 많은 차기 주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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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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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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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지방선거에서 여야는 어느 누구도 승리를 주장할 수 없는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여야 승패에 초점을 맞출 경우 세력 간 절묘한 균형을 이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형 국가 지도자를 누가 많이 배출했는가로 따진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이 앞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가 차기 대선주자군으로 굳어졌고 안철수·문재인 의원은 건재합니다. 게다가 대구에서 40% 득표율을 건져낸 김부겸 전 의원은 여야를 떠나 국민적 감동을 만들어 냈습니다. 손학규 전 대표도 무시할 수 없죠. 반면 새누리당엔 차기 대선주자감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희미합니다. 한창 당 대표 선거전을 뛰고 있는 김무성 의원이나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한 정몽준 전 의원,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의욕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경필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도 잠재적인 차기 후보감으로 관심을 받고 있죠.

 현직 대통령의 권력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집권 2년차에 엉뚱하게 웬 차기 얘기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집권세력에겐 경고가 필요하고 수권세력에겐 변화가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여야 간에 10여 명의 국가 지도자군이 있지만 자기 안에 메시지를 품고 있는 사람은 야당 쪽에 많습니다. ‘메시지 정치인’은 말과 행동, 경력, 세월, 고난과 단련, 대중의 지지를 통과하며 국민적 규모로 일정한 이미지가 형성된 정치인입니다. 대중은 정치인을 이미지로 소비합니다. 대중이 정치인을 한 명 한 명 인격적으로 만나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정 정치인의 이름이 거명되는 순간 대중이 ‘맞아, 그런 사람이야’ 하는 스토리가 떠오르면 메시지 정치인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메시지 정치인이 다 대통령이 되는 건 아니지만 메시지 정치인이 아니면 대통령이 될 수 없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이번 선거에서 ‘시민파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확립했습니다. 정당이 혐오스러운 세상에 정당에 기반하지 않고, 가능한 한 정당에 빚을 지지 않고 서울시장에 두 번 당선된 정치인이죠. 박 시장이 “오로지 서울, 오로지 시민”이란 정치 슬로건을 내건 것엔 시민파 정치인이란 새로운 방식의 정치를 해보겠다는 비전이 담겨 있습니다. 안희정 지사는 ‘국가 단결’ ‘애국적 진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친노 세력의 적자에 정통 운동권 출신의 입에선 나오기 어려운, 의표를 찌르는 메시지입니다. “이승만·박정희·김대중·노무현 등 과거 대통령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선조에게 시비를 걸고 따지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일인데 우리 정치인들은 주로 과거를 갖고 싸우고 있으니 안타깝다”는 얘기를 일관되게 하고 있습니다. 게으른 진보들이 ‘국가’나 ‘보수’에 대해 갖는 터무니없는 적개심을 그에게서 찾을 수 없습니다. 안철수와 문재인 의원은 빛이 바래긴 했어도 각각 ‘새정치’와 ‘진보’라는 메시지가 있죠.

 새누리당 쪽은 어떻습니까. 김문수 전 지사는 대중적 인기는 낮지만 “민족보다 위대한 대한민국”이란 메시지를 일관되게 펴고 있습니다. 남경필·원희룡 지사는 도정에 야당을 참여시키는 연정(聯政) 실험이 신선합니다.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분열과 증오, 대립과 갈등의 여의도 정치에도 영향을 줄 겁니다. 두 사람의 ‘연정 메시지’는 아직은 초보적 수준입니다. 김무성 의원은 당권에 근접해 있지만 한마디로 딱 표현할 보편적 메시지를 갖고 있는지는 의문스럽습니다. 어느 한 세력의 대표인 건 틀림없는데, 국가를 어떻게 끌고 나가겠다는 비전을 간명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죠.

 1987년 민주화 이래 정권교체는 10년 단위로 이뤄져 왔습니다. 노무현 정권 2년차인 2004년부터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은 2년간 9명의 당대표가 교체될 정도로 불안했습니다. 반면 야당인 한나라당은 2년 임기를 꽉 채운 박근혜 대표와 청계천 복원에 성공한 이명박 서울시장이 일찌감치 차기 주자로 등장해 10년 집권의 인적 인프라를 구축했습니다. 박근혜 정권 2년차인 지금 야당엔 안정적인 차기 주자군이 형성됐는데 집권당엔 그런 수준의 인물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세상이 팽팽 돌며 변하는 것 같아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것에 놀랄 때가 있습니다.

전영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