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보험 들고 병력 적은 영문 명찰 챙기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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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노년층의 발걸음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지난 5년간(2009~2013) 50대 이상 해외여행객은 해마다 평균 8% 이상 증가했다.

20대(3.7%)·30대(5.3%)·40대(5.1%)를 앞지른다(한국관광공사 내국인출국 통계). 자유·배낭·오지여행, 순례길, 봉사처럼 여정도 다양하다.

나이와 열정은 반비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수록 꼼꼼히 준비해야 하는 것이 있다. 건강과 관련한 주의사항이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 해외로 떠나는 것 자체가 질병의 요소다. 만성질환과 상대적으로 약한 체력·면역력은 여행의 즐거움을 반감시킬 수 있는 복병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건강가이드를 숙지해야 한다. 중노년의 지구별 여행자에게 필요한 ‘플랜H(Health)’를 짚어본다.

상비약 챙기고 영문 처방전 준비를

중노년 해외여행자에게 유용한 약 주머니. 약을 아침·점심·저녁으로 나누어 보관하면 착오 없이 안전하게 복용할 수 있다. 사진=강북삼성병원

갑작스러운 환경변화는 신체 부담을 가중시킨다. 중노년층은 만성질환이 악화하기 쉽고 감염질환에도 취약하다. 이들이 여행 전 챙겨야 할 건강 수칙의 첫째는 본인의 병력·복용약·연령 등을 영어로 적은 명찰이나 팔찌를 준비하는 것이다. 의식 없이 갑자기 쓰러졌을 때나 현지에서 의료진과 소통하는 데 필요하다. 약국·병원에서 증상을 표현할 수 있는 영어 단어를 준비하고, 주치의 전화번호를 챙기는 것도 도움이 된다.

둘째. 여행자보험에 가입한다. 중노년층은 지병이 악화하거나 넘어져 골절상을 입어 응급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확률이 높다. 협심증·심근경색 같은 심혈관계질환으로 의료기관을 찾는 일도 잦다. 여행 지역의 의료기관·약국 위치를 미리 알고 있으면 사고 시 빠른 대처를 할 수 있다.

셋째. 본인이 복용하던 약은 넉넉히 챙기고 영문처방전을 함께 준비한다. 일부 국가에서 반입이 안 될 수 있어서다. 인슐린을 맞는 당뇨환자는 현지에서 바늘을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여유 있게 가져간다. 약은 반드시 기내에 가지고 탑승한다.

넷째. 여행 일정은 여유 있게 계획한다. 공항에 세시간 전 도착하고, 환승 시간도 세 시간 정도 넉넉한 것이 좋다. 마음이 조급하면 무리하게 뛰다가 심장에 무리가 간다든가 숨이 차고 쓰러지기 십상이다. 숨돌릴 틈 없이 일정이 빡빡하면 피로·관절통 같은 후유증이 오기 쉽다.

마지막으로 여행 6~8주 전에는 병원 내 여행의학센터 등을 찾아 전문의와 상담한다. 개인의 질병력과 여행 종류·기간, 현지의 기후환경에 따라 권장백신과 처방약이 달라진다. 항체가 형성되려면 2~3주 이상 필요한데 노년층은 예방접종을 해도 항체형성률이 젊은 사람보다 낮다. 백신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행동지침을 안내받는다.

비행기 이·착륙 때 껌 씹으면 도움

기내는 신체에 이상 반응이 생기기 쉬운 공간이다. 폐기능이 약한 중노년은 약간의 기압 차에도 위험해질 수 있다. 기압이 낮으면 몸 안에 녹아 들어가는 산소의 양이 줄어든다. 또 신체 내에 가스가 잘 차는데 이 때문에 헛배가 부르면서 횡격막이 올라가 폐활량이 더 줄어든다. 출발 전 양파·콩 등 가스가 많이 생기는 음식은 피한다. 탄산음료만큼 사과주스도 좋지 않다. 운동을 할 때 호흡곤란이 있거나 폐활량이 일반인보다 50% 이내로 떨어져있는 환자는 의사와 상담을 받는다.

부비동(코 주변 뼛속)과 중이강(바깥귀와 속귀 사이 공간)에 질환이 있다면 이·착륙 동안 껌을 씹거나 침을 삼켜준다. 중노년층은 신체 내 압력이 변화하면서 귀에 통증이나 고막의 천공, 중이염이 올 수 있다.

기내에 장시간 앉아있으면 혈액순환에 이상이 생겨 부종이나 혈전증(혈액이 굳는 것, 이코노미클래스증후군)이 오기 쉽다. 혈전증을 앓았거나 만성질환·암환자, 에스트로겐 약물 복용자는 위험이 높아진다. 엉덩이는 좌석 깊숙이 넣고 허리에는 쿠션을 댄다. 발목을 자주 돌려주고 발가락을 들어올리는 스트레칭으로 종아리 근육을 움직인다. 몸에 달라붙는 바지는 입지 말고, 움직임이 불편한 창가·가운데 자리는 피한다. 차고 건조한 환경은 혈액순환·심장질환·호흡기질환에 좋지 않으므로 담요를 덮고 물은 충분히 마신다.

멀미는 움직임에 몸이 적응하지 못해 발생한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수록 평형기관의 기능이 떨어져 멀미를 덜한다. 평소 멀미가 심하다면 탑승 30분~1시간 전에 붙이는 멀미약을 챙긴다. 비행기에서는 날개 윗부분의 흔들림 적은 좌석을 택한다.

6시간 이상 시차 땐 약물·인슐린 조절

6시간 이상 시차가 있는 지역은 약을 복용하는 시간이나 인슐린 양을 조절해야 한다. 특히 당뇨환자는 필요한 인슐린 양이 달라진다. 동쪽으로 여행하는 환자는 3분의 1 정도의 인슐린이 더 필요한 식이다. 식사시간·음식·약 복용시간도 영향을 미친다. 휴대용 키트로 혈당을 스스로 측정해 필요한 인슐린 양을 파악한다. 매일 복용하는 약은 현지에서 먹기 쉬운 시간에 맞춰 한국에서 미리 조정한다. 일정상 아침이 바쁘면 저녁 시간에 맞추는 식이다.

시차 부적응은 먼 거리를 짧은 시간에 여행해 생긴 시간차를 신체리듬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연령이 높을수록, 동쪽(미주)으로 갈수록 적응기간이 더 걸린다. 낮에는 졸리고 피로하며 입맛이 없다. 밤에는 불면에 시달린다. 수면제를 쓰는 건 좋지 않다. 중노년층은 호흡기능이 떨어지거나 정신이 멍하고 어지러울 가능성이 크다. 햇빛을 충분히 보는 게 생체리듬을 가장 빨리 바꾸는 방법이다. 동쪽(미주)으로 여행할 때는 출발 3~4일 전부터 한 시간 일찍 잠들고 1시간 일찍 일어난다. 서쪽(유럽) 방향의 여행은 반대로 한다.

급성설사는 여행객에게 가장 흔한 질환이다. 일반적으로 하루 이틀이면 낫지만 중노년층은 증상이 심하고 길어지기 쉽다. 경구 수액제를 2~3팩 준비한다. 하루 3번의 가벼운 설사는 수분 보충으로 충분하지만 피가 섞이거나 고열을 동반한 설사는 병원을 찾아야 한다.

나이가 들면 위산분비 능력이 떨어져 식중독 위험이 더 높다. 음식은 익히고 물은 끓이며 과일·채소는 껍질을 벗겨서 먹는다. 중노년층은 신장기능이 떨어져 수분·전해질 섭취에 문제가 잘 생기기 때문에 탈수·일사병에 쉽게 노출된다. 한낮에 무리하게 돌아다니는 일정은 피한다.

여행 중 발생한 건강 문제는 귀국 후 증상이 호전됐더라도 병원을 찾아 당시 증상과 현지에서 복용한 약물, 처치 받은 상황을 자세히 설명한다. 질병에는 잠복기간이 있다. 중노년층은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적으므로 설사·발열·불면증 등 이상 증상이 있으면 진료를 받는다. 

이민영 기자 , 사진= 김수정 기자
도움말=강북삼성병원 감염내과 염준섭 교수(여행의학센터), 순천향대 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유병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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