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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보다 국산, 고가보다 저가, 기능보다 안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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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호 18면

화장품 시장에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 수입 화장품 판매가 급감한다. 저가 국산 브랜드와 약국 화장품 브랜드가 그 자리를 치고 올라온다. 단순히 경기 불황의 영향이 아니라고 시장 전문가들은 본다. ▶화장품이 노화 방지의 핵심 수단에서 보조 수단으로 이동하고 ▶브랜드보다 품질을 따지는 합리적 소비가 정착하며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등 화장품 시장에 거대한 변화가 오고 있다는 얘기다.

화장품 시장 제3의 물결

수입 화장품, 2009년 정점 찍고 내리막
수입 화장품 시장의 정점은 2000년대 후반이었다. 국내 시장에서 수입 화장품의 점유율은 2000년대 초반 이후 꾸준히 올라 2009년 26%를 달성했다. 이후 주춤하던 시장 비중은 지난해 23%로 크게 미끄러졌다. 2004년(24%)의 위상도 채 되지 않는다. 국산 화장품이 그 자리를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왔다. 2008년만 해도 47%에 불과하던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57%로 치솟았다. 2000년대 후반부터 4, 5년 남짓한 기간 동안 화장품 시장이 크게 흔들린 것이다.

수입 화장품 시장이 정점을 찍은 2000년대 후반은 국내 피부과 의원이 ‘포화 상태’라는 진단을 받은 시기와 일치한다. 빠른 속도로 늘던 전국 피부과 의원 수는 2010년 1000곳을 돌파한 뒤 2013년까지 1098곳으로 제자리걸음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니 시술 가격은 빠르게 떨어졌다. 피부에 미세한 상처를 만들어 재생을 촉진시키는 레이저 시술이나 근육을 마비시켜 주름을 펴주는 보툴리늄톡신(일명 보톡스) 시술 등은 지난 5년 사이 시술 가격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부유층이나 연예인이 받는 것으로 여겨지던 피부과 시술이 누구나 받을 수 있게 저렴해진 것이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트분석센터 연구교수는 “피부과 문턱이 낮아지며 기존엔 화장품을 노화 방지의 유일 수단으로 삼던 대중이 화장품을 일상 보습 관리를 하는 보조 수단으로 느끼기 시작했다”며 “화장품 시장 전반의 성장률이 내려가고 있는 것도 피부과 시술 대중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연히 세계에서 가장 기초 화장품을 많이 쓰기로 유명한 한국 소비자들의 기초 화장품 사용 개수도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롯데백화점 김시환 선임 MD는 “얼굴에만 예닐곱 가지 기초 화장품을 바르던 소비자들이 최근엔 복합 기능의 화장품을 쓰며 화장품 수를 서너 개로 줄여나가는 추세”라며 “대신 헤어나 보디용품, 향수 같은 토털 케어 매출이 큰 폭으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화장품에 대한 정보와 평가가 퍼지면서 화장품의 위상이 기존의 신뢰재(Credence Good)에서 탐색재(Search Good)로 바뀌었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신뢰재는 써 봐도 당장 효과를 알 수 없는 제품을 가리킨다. 그래서 브랜드력과 마케팅에 따라 판매가 좌우된다. 하루 이틀 바른다고 효과를 알 수 없는 화장품의 경우 대표적 신뢰재로 꼽혀왔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성분 정보가 공개되고 많은 사용자의 평가가 축적되면서 정보를 수집하는 것만으로 품질이 짐작 가능한 탐색재가 됐다는 것이다. 이는 수입 화장품 중에서도 특히 명품 패션 브랜드 계열의 매출이 크게 떨어졌다는 점과 일맥 상통한다. 신세계백화점 장혜진 홍보부장은 “고가 수입 화장품 중에서도 연구개발 기능이 강하고 성분을 중시하는 화장품 전문 브랜드는 매출이 비교적 안정적인 데 반해 패션 브랜드 계열의 기초 라인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며 “브랜드보다 품질을 따지는 합리적 소비가 확산하는 영향”이라고 말했다.

1 냉장 유통 화장품인 LG생활건강의 프로스틴. 2 멸균 용기로 방부제를 없앤 아벤느. 3 제품 한 개당 성분을 10개 이하로 최소화한 이니스프리의 미니멈 라인.

무방부제 대세 … 냉장·멸균 화장품도
수입 고가 화장품 대신 뜨는 키워드는 세 가지다. ‘안전’ ‘국산’ ‘중저가’다. 특히 민감성 피부 환자가 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안전성은 화장품 업계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인터넷을 통해 성분을 일일이 따져보고 사용하는 소비자들을 의식해 방부제·살균제 등을 아예 빼는 제품들이 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방부제와 피부 유해 성분을 넣지 않는 대신 화장품을 생산부터 판매 단계까지 냉장 유통시키는 브랜드 프로스틴을 출시했다. 프로스틴 담당 마케터 이상미씨는 “10대 후반부터 화장을 시작하는 요즘 여성들은 화장품 사용 기간이 그만큼 길기 때문에 성분과 유해성에 더더욱 민감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약국 화장품 브랜드 아벤느는 화장품을 짜는 과정에서 외부 공기와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한 특허 받은 멸균 용기로 올가을 신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아모레퍼시픽의 이니스프리는 10가지 이하의 성분으로 피부 자극을 줄인 ‘미니멈 라인’을 내놨다. 손경진 이니스프리 마케팅 담당 과장은 “요즘 소비자들이 무조건 화장품을 많이 바르는 게 피부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고기능성 성분을 얹기보다 자극이 되는 성분을 빼서 편안함을 주는 화장품이 대세”라고 설명했다.

대기업도 중저가 라인 주력
국산 화장품 시장이 크게 성장하는 가운데 특히 중저가 브랜드의 선전이 눈에 띈다. 합리적 소비 패턴 정착, 경기 불황에다 외국인 관광객의 싹쓸이 쇼핑이라는 3대 호재가 더페이스샵·이니스프리·미샤 등 중저가 브랜드를 쑥쑥 키우고 있다. 국내 시장을 양분하는 대형 화장품 회사들도 저가 브랜드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모양새다. LG생활건강이 2010년 인수한 더페이스샵은 2010년 매출 2896억원에서 지난해 523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로 성장하며 이 회사 최대 브랜드로 자랐다. 국내 최대 화장품 회사 아모레퍼시픽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 중저가 브랜드 이니스프리는 올 상반기 매출이 전년 대비 41% 증가하며 미샤를 제치고 브랜드숍 화장품 2위를 차지했다.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브랜드 가운데 가장 큰 매출 증가율이다.

안지영 IBK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국내 화장품 회사들이 연구개발에 집중하며 중저가 화장품의 기술력에 대해 소비자들이 깊은 신뢰를 하게 된 게 가장 큰 변화”라며 “대형 화장품 회사는 물론 한국콜마·코스맥스 같은 제조자개발생산(ODM) 전문 업체들의 기술 발전도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 저변이 확대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김민정 KTB투자증권 화장품 담당 애널리스트는 “소비 합리화와 국산 화장품의 품질 향상 등으로 당분간 시장의 축은 수입 화장품에서 국산으로, 고가에서 중저가로 옮겨 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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