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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칼럼] 난폭해 보이는 손동작 속엔 애틋함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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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호 27면

조르주 치프라(Georges Cziffra·1921~94)는 헝가리 출신의 피아니스트로 1968년에 프랑스 시민권을 받았다. ‘리스트의 재래’라는 평가를 받았다.

‘연주 실력은 초짜에서 중급을 거쳐 고수로 등극한다. 고수 경지를 넘어서면 괴수가 되고 궁극에는 신의 경지로 떠오른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신의 반열 다음 단계가 있으니 조르주 치프라라고….’

[詩人의 음악 읽기] 피아니스트 조르주 치프라

20대가 아닌가 싶게 발랄한 문투로 쓴 어느 음악 블로거 글을 옮겼다. 헝가리 출신의 프랑스 피아니스트 치프라를 두고 신의 다음 단계로 추앙하는 견해에 굳이 토를 달지 않겠다. 인간이 창조한 신은 하나가 아니어서 잡신, 제신, 만신의 격투장이 신의 거처인 인간계라고 생각하니까. 신 다음 단계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피아노 오타쿠 블로거의 치프라론(?)을 좀 더 훔쳐본다.

‘…전쟁이 났을 때 그는 모든 부대원들 가운데 자기 혼자 살아남은 인물이다. 피아노를 칠 때 악보에 있는 음표 빼고는 하나도 지키는 게 없다. 악상 기호는 죄다 무시한다. 손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인데 기교는 세계 최강이었다. 이 사람 연주를 듣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다른 피아니스트 연주는 거의 듣지 않게 된다. 이 사람이 편곡한 모든 곡은 원곡과 달리 아주 괴상하게 변한다.’

1950~60년대 전성기를 누린 피아니스트 치프라에 대해 전혀 상반된 평가가 떠돈다. 작고한 김원구 선생 같은 고전적 평론가는 치프라 스타일에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었다. ‘리스트의 재래(再來)라고 크게 소문난 그는 비길 데 없는 테크니션으로… 그 쇼업한 연주는 소위 내성적인 점 따위는 전혀 없고 모든 음악이 테크닉의 전시장이 된다. 그 흥행적인 피아노 쇼는….’ 이런 식이다. 비평이라기보다 근엄한 선생님의 꾸짖음에 가깝다.

치프라의 리스트 연주 음반.

생애를 통해 작품성을 진단하는 것은 비평이론으로 꽤 낡은 방식이라 요즘은 다들 꺼리지만 조르주 치프라는 좀 예외로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우선 그의 혈통에 집시 피가 섞여 있다. 아버지가 집시 오케스트라 연주자였다. 전쟁 때 일가족이 고국 헝가리에서 추방되어 프랑스에서 감옥생활을 했고, 아버지에게 피아노를 배운 소년 치프라는 서커스에 나가 돈을 벌었다. 그러다 아주 잠시 리스트 음악원에서 정규 교육을 받고 12세에 정식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데뷔한다. 그 후 전쟁 참전, 포로생활, 포탄으로 인한 한쪽 청력의 상실, 전쟁 후 바에서 생계를 꾸리다가 정치범으로 투옥, 2년 넘는 강제 건설 노역으로 손목 인대의 훼손, 피아노 구경조차 못했던 4년여의 생활고, 그리고 또, 그리고 또….

‘흥행적인 피아노쇼’라고 모욕적인 평가를 받은 치프라의 삶이 이랬다. 1994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또 여러 가지 힘든 곡절을 겪어내야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정신 사나운 속사포 연주가 마냥 손재주만으로 보이지 않는다. 유튜브에 들어가면 세상에서 제일 빠르게 연주해야 하는 곡들, 가령 하차투리안의 사브레 댄스(칼의 춤)나 리스트의 ‘반음계적 대갤럽’ 연주 장면을 찾을 수 있다. 성질을 부리는 건지 그의 손동작은 정말로 난폭해 보인다. 이걸 서커스로 여길지 뛰어난 연주력으로 반응할지 각자 마음이다. 품위 있는 리스트를 조르주 볼레 연주에서 찾는다면 거의 약 먹고 치는 듯 붕붕 나는 리스트는 단연 치프라다.

사실 치프라의 인생고는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전쟁, 혁명, 굶주림과 대재앙을 겪어야 했던 지난 세기 대다수 사람이 같은 고난을 짊어졌다. 식민지를 거쳐 전쟁과 경제 건설, 민주화 운동기까지 겪어낸 우리네 사정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웬일일까. 시련기에 혼자만 슬쩍 빠져나가 유유자적했던 인물들이 예술계, 음악계에 유난히 많다. 이제 와서 무슨 탓을 하겠는가만 그래도 죽어라 고생한 인물들에게 약간의 가산점을 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치프라의 피아노 연주에는 그런 애틋함이 함께 녹아든다.

유복하고 안정된 삶을 누린 연주가라고 뭐라 할 일은 아니다. 더욱이 최근 30여 년 동안은 치프라 식의 핍절한 행보를 겪을 일 자체가 없었다. 비행기 폭격 소리를 들으며 피아노를 연마했다는 베트남의 당다이 손 정도가 예외적으로 존재한다고 할까. 그래서인지 좋은 학교만 전전하고 생의 드라마가 없는 요즘 연주자들에게 좀 심심함을 느낀다. 치프라처럼 ‘막 치는’ 것 같은데 절창이 되는 그런 괴이한 인물을 보기 힘들다.

치프라 연주는 역시 리스트에서 꽃을 피운다.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협주곡 2번이 돋보이고, 리스트 패러프레이징(바꾸어 표현하기) 모음집도 정점을 찍는다. 누가 정밀하게 시간을 재보면 재미있겠다. 중국의 랑랑과 한창 때 치프라를 비교해서 누가 더 빠르게 치는지. 속주력은 몰라도 멀멀한 랑랑에 비해 성질만은 치프라가 비할 수 없이 독했을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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