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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공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홍길동전은 마지막에 적당 3천명을 거느리고 한 무인도에 건너가는 것으로 끝난다. 율도 라는 그 무인도는 그러나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 땅에 있는 것이었다.
『홍길동전』 을 쓴 허균이 살던17세기에는 무인도가 흔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사람들이 몰랐을까?
『송사』 의 고려열전에 보면 우리 나라의 섬이 3천7백에 이른다고 전해있다. 그 당시는 그 중의 대부분이 무인도였을 것이다.
『허생전』에서 보면 허생원은 변산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3일 밤을 줄곧 달린 다음에 찾아낸 「무인공도」 에서 이상국을 꾸며낸다.
2천명의 도적들이 살만한 곳이니까 상당히 큰 섬이었을 것이다.
『허생전』 은 18세기에 나왔다. 그렇다면 1세기 사이에 이상국이 그만큼 가까워 졌다는 얘기와도 같다.
무인도는 야릇한 낭만을 불러일으킨다. 어린이들에게는 모험의 꿈을 안겨준다.
그러나 옛 우리네 사람들에게는 어두운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세계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고려말에 안견이 그려낸 『무능도원도』 도 무인도를 무대로 한 「유토피아」나 다름없었다.
우리 나라의 섬은 북한지역을 제외하면 모두 3천4백44개. 그 중에서 무인도는 2천5백87개가 넘는다.
지금까지 지적부에 등록되지 않았던 섬도 6백95개나 된다. 휴전선 이북에도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3백92개의 무인도가 있다.
무인도는 원칙적으로는 모두가 국유지다. 그러나 아무나 먼저 집을 짓고 살거나 밭을 갈면 연고권을 주장할 수 있고 또 불하받을 수도 있다.
이런 무인도의 3분의2는 서남해안에 흩어져 있다.
전라남도연안에 있는 것이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그것은 소백산맥의 여세가 바다속 멀리까지 길게 뻗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해에서는 토끼나 염소를 방생하는 무인도들도 많다. 물론 2천6백개에 이르는 무인도중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만한 곳은 극히 드물다.
허생전의 무인도도 서남해안쪽에 있었다. 최근 무인도를 찾아 나선 다섯소년들은 제주도 남쪽이 목표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또 최근에 용케도 조난 20일만에 구조된 12인의 농부들이 갇혔던 무인도도 서산의 서남쪽 앞바다에 있었다.
그것은 육지에서 반나절이면 닿을 수 있는 섬이다.
가깝다면 매우 가까운 곳에 있는 섬인데도 2주일이 넘도록 아무도 그들의 SOS신호를 보지 못했다. 허생전의 시대로부터 2백년이 넘어 흘렀다는 게 믿기 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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