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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월드컵] 일본 '스시타카' 길을 잃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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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일본이 20일(한국시간) 열린 그리스전에서 0-0으로 비겨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1무1패에 그쳤다. 공 점유율, 슈팅 수에서 그리스에 모두 앞섰지만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일본 수비수 우치다 아쓰토가 경기 도중 그라운드에 누워 있다. [나타우 로이터=뉴스1]

“4강에 가겠다”고 큰소리쳤던 일본이 브라질 월드컵 예선 탈락의 벼랑 끝에 몰렸다.

 일본은 20일(한국시간) 나타우 에스타지우 다스 두나스에서 열린 C조 2차전에서 그리스와 0-0으로 비겼다. 1차전에서 코트디부아르에 1-2로 패했던 일본은 1무1패(승점 1)로 조 3위에 머물렀다. 25일 콜롬비아와 벌이는 조별리그 최종전을 반드시 이겨야 16강 진출에 한 가닥 희망을 걸 수 있다. 콜롬비아는 코트디부아르를 2-1로 꺾고 2연승으로 조 선두에 올랐다.

 일본은 이날 그리스를 압도했다. 공 점유율에서 68-32, 슈팅 수에서 16-9로 크게 앞섰다. 전반 38분에는 그리스 주장 코스타스 카추라니스(35)의 경고 누적 퇴장으로 수적인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이후 수비에 치중한 그리스를 효과적으로 뚫지 못했다. 슈팅은 많았지만 소득은 없었다.

 월드컵 개막 전만 해도 일본에 대한 전망은 호의적이었다. 한국이 속한 H조 최강자로 꼽히는 벨기에를 지난해 11월 3-2로 꺾는 등 최근 A매치 5연승을 달렸다. 쉴 새 없이 빠른 패스를 주고받으며 상대를 무너뜨리는 스페인식 ‘티키타카(탁구공이 왔다 갔다 하듯 공을 주고받는다는 의미의 스페인어)’를 추구하며 아시아에서 가장 창조적인 경기 운영을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의 대표적인 음식인 초밥에 빗대 ‘스시타카’라는 별칭도 붙었다. 알베르토 자케로니(61) 일본대표팀 감독은 지난해 12월 월드컵 조 추첨 직후 “4강에 오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본선에서는 우왕좌왕했다. 조직적인 패스 축구의 강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조급하기만 했다.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 중인 간판 미드필더 가가와 신지(25)는 본선 2경기에 출전해 슈팅을 1개도 날리지 못했다. 골을 넣어야 할 최전방 공격수 가키타니 요이치로(24), 오사코 유야(24)는 상대 수비를 뚫지 못하고 침묵했다. 일본 J리그 사간 도스를 이끌고 있는 윤정환 본지 해설위원은 “공격수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상대가 수비를 견고하게 하고 나오면 공격수들이 이를 쉽게 공략하지 못했다. 이기고자 하는 모습은 보였어도 세계의 높은 벽만 실감했다”고 분석했다.

 자케로니 감독은 “우리가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 그러나 골을 넣지 못했다. 공격을 하면서 우리의 장점을 발휘하지 못했다. 선수들이 많이 움직였어야 했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코트디부아르전에서 1골을 넣었던 미드필더 혼다 게이스케(28)는 떨리는 목소리로 “분하다”고 했고, 공격수 오쿠보 요시토(32)는 “정말 죄송하다. 내가 너무 한심하다”고 자책했다. 일본 축구팬 사이에서도 대표팀에 대한 실망과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일간지 아사히신문의 시바타 마사히로 기자는 트위터를 통해 “일본 대표팀은 본선 참가 32개국 중에 가장 실력이 떨어진다. 일본이 어떤 강팀과 붙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포장했던 게 부끄럽다”고 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아직 한 경기가 남았지만 일본 대표팀의 분위기는 더 어수선해졌다. 일본 스포츠전문지 산케이스포츠는 20일 “자케로니 감독이 월드컵 이후 성적에 관계없이 사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자케로니 감독은 “정해진 건 없다. 다만 여름방학을 고향에서 보내는 것만 정해져 있을 뿐”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경기에는 코트디부아르전에 이어 욱일기(전범기)를 새긴 의상을 입거나 페이스 페인팅한 일본 팬들이 관중석에 등장해 논란을 낳았다.

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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