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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운전사의 24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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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준오씨 (34·서울서대문구녹번동)는 7년째 「핸들」을 잡고 있는 「택시」운전사.
통금이 끝나는 새벽4시께면 기계처럼 눈을 뜬다.
상오5시. 차 점검을 대충 끝낸 이씨는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핸들」을 잡는다.
신촌시장입구―. I첫 손님이다.
『안경을 썼군』―혀를 차며 이씨는 손을 흔드는 첫 손님을 못본체 그대로 달린다.
새벽녘의 큰 손님은 역시「호텔」「나이트·클럽」에서 밤을 새고 나오는「고고」족들. 여의도B「호텔」 앞에 이르자 두쌍의 젊은이들이 차를 세운다. 청진동해장국골목까지 8백20윈 「코스」. 2천원을 선뜻 내고 내린다. 첫 벌이가 괜찮은 편이다.

<첫손님은 해장국파로>
상오7시50분. 오늘의 벌이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출근길 합승손님을 태우기위해 화곡동으로 달린다.
시청까지 「미터」요금은 1천3백원이지만 합승 (요금 1인 5백원)을 하면 2천원을 번다. 적어도 두번은 뛰어 4천원은 벌어야한다. 어떤날은 경찰의 단속때문에 합승을 못할때도 있다.
더구나 올 겨울들어 관광회사 출근 「버스」들 때문에 합승도 쉽지않다. 그래서 벌이가 신통치 않은 날이 많다.
출근시간이 지나면 손님이 뜸하다. 여자승객이 의외로 많다.
장바구니를 들고 기본요금도 안되는 시장길을 서슴없이 타는 주부, 공사판에 합승하는 막벌이일꾼들, 그리고 등교길의 학생손님을 태울때는 부담스럽다.
「토큰」이 아까와 시내 나들이를 못하는 가족과 이웃 아낙네들이 생각난다.
이씨는 하루 수입에서 회사에 3만4천원을 내야한다. 이중 회사몫이 1만9천원, 8천원은 기름값으로, 7천원은 운전사일당(격일제근무, 15일근무). 일당으로 준돈은 월급조로 한달 기준으로 회사에서 되돌려받는다.
하루 꼭 벌어야 하는 이 입금액 말고도 최소한 8천원을 더 벌어야 생계를 꾸릴수 있다. 합승을 해야하고 승차거부를 해야 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법규위반으로 물어야 하는 벌금없이 꼬박 15일을 뛸 경우 임금이의 평균수입은 12만원선 (1일 8천원). 월 회사예치금 10만5천원을 합친 22만5천원으로 한달을 산다. 예치금 10만5천원이 월급이므로 갑근세 (면세점 12만원)는 없다.
저축추진중앙위원회가 내놓은 소득계층별가계지출 모형은 23만원 소득자가 월4만원을 저축(78년 10월 물가기준)할수 있는것으로 돼있으나 이씨는 일당으로 살기때문에 빚지지 않는것이 다행스럽다.

<격일근무,저축은 못해>
이씨의 생계비 (5인가족) 명세를 본다. ▲식비l7만원선. 가끔 국수로 점심을 때우고도 전체수입의 30%선이나 된다. ▲광열비=1만4천원 연탄값과 수도·전기값이다. ▲주택비=방2칸의 삭월세가 l백만원 보증금에 월3만원 ▲위생보건비=목욕값등l만6천원 ▲피복비=1만5천원 ▲TV시청료등 1만원 ▲가족교통비=1만원 ▲교육비=국민학교에 다니는 두아이학비 1만6천원 ▲공과금=4천원 ▲잡비=1만8천원 총생계비는 20만3천원이다.
이생계비에 이씨의 씀씀이는 빠져있다.
이씨의 수입으로 저축은 어림도 없다.
점심시간. 8백원짜리 제육백반을 앞에 놓은 점심은 하루중 가장 즐겁고 기다려지는 때다.
허기진 배를 채우는 포만감 말고도 갖가지 정보를 이곳에서 얻는다.
「택시」에서 시골아낙네가 순산한 얘기. 거액의 자기앞 수표를 주워 임자에게 되돌려 준 미담. 들치기·날치기를 쫓아가 격투끝에 붙잡은 모험담은 듣기에 즐겁다. 그러나 합승시비, 교통경찰관들과의 뒷거래, 술취한 승객들의 횡포, 젊온 취객들의 아니꼬운 꼴을 들을라치면 「핸들」을 놓고 공사판에라도 나서고 싶은 생각이 울컥 치민다.

<점심먹으며 정보교환>
하오4시. 서울역근처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인천가는 승객을 태웠다. 대낮 한가한 시간에 봉을 잡은것이다. 요금1만원.
오가는 1시간남짓결리는데 평균수입의 4배가 오른 셈이다.
「렌터카」「콜·택시」가 들어서면서 장거리 승객을 잡으면 운좋은 날이다.
손님이 가장 적고 짜증스런 하오6∼7시. 퇴근길 「버스」가 곡예운전을 하고 승용차가 밀려 도심지를 빠지는데 30∼40분이 걸린다.
하오8시. 장거리를 뛴 덕으로 평소보다 1시간 남짓 빠르게 회사에 낼 3만 4천원을 벌었다.
이때부터 벌이가 집에 갖고 들어가는 알짜 일당이다.
이시간 합승에 가강 좋은 거리는 영동. 남대문「도오뀨·호텔」앞에서 하오10시까지 세탕을 뛰어 6천원을 벌었다.
밤11시. 하루벌이의「피크」는 무교동·다동등 유흥가에서 취객들을 찾는것이다.
대부분의 운전사들이 아예 「택시」문을 안으로 잠그고 창문을 통해 손가락신호로 손님을 고른다.
우선 손가락 2개짜리(2천원)는 낙방이다. 3개짜리에 머뭇거리다가 4∼5개짜리에 문을 열어준다.
이씨도 마지막 손님을 고른다.
하오11시20분, 신촌·마암동 손님2명에게 각각 3천원씩 받기로 하고 무교동에서 차를 몰았다.
차고 도착은 30분후인 하오11시50분.
총수입 4만6천2백원. 입금·식사대등을 빼고도 1만원을 손에 쥐었다. 운이 좋은날이다. 통금에 걸리지 않기 위해 집까지 뛴다.
다음날은 쉬는 날이지만 버릇처럼 새벽에 깬다. 교대운전사에게 차를 넘겨주고 돌아와서는 상오11시께까지 다시 잠을 잔다. 늦게 아침밥을 들고 집근처 자동차경비공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을 찾는다.
저녁무렵에 「텔리비전」앞에 앉아 비로소「가정」을 느낀다.
서울시내 취업 「택시」 운전사는 2만3천9백46명. 「택시」 보유대수는 1만3천6백64대. 격일제로치면 적정운전사수(대당2.2명)는 3만60명이어야 하나 6천l백14명이 모자라기때문에 한달에 20일을 일하는 운전사도 있다.
운전면허소지자증 20%정드가 취업을 않고있다. 이는 생계가 불안하고 일이 고되기 때문이라고 서울 「택시」 사업조합관계자들이 말했다. <고정웅·문창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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