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은 분명히 철갑선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임진왜난때 이순신장군이 건조한 것으로 알려지는 거북선이 철갑이 아니라 목선이었다는 학계의 통설을 뒤엎는 새학설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있다.
박혜일 교수(서울대공대·원자핵공학)가 22일 하오3시 성균관대에서 열린 과학사학회연구발표회를 통해 「이순신귀선의 철장갑과 이조철갑의 현존원형과의 대비」를 발표, 이조철갑의 원형을 이조도성과 산성요새에있는 철갑성문비에서 찾고 거북선은 철갑이라고 주장했다.
거북선이 철갑임을 증명하는 이조철갑의 원형인 성문철갑비는 화포의 실용에 따라 방패구실을 위해 성문에 씌워진 철판이다. 이조초기의 화포는 성능이 거의 근대적이라고 할 정도로 발전돼 있었다. 태종∼세종대에 만들어져 실전에 쓰인 천자포는 사정거리가 종래의 4백∼5백보에서 1천3백보로 강화된것이다. 1보를 1.2m로 셈한다면 수철연의환(7.8g짜리)으로 4천m이상, 대장군전 (30㎏)으로 1천4백40m에 달하는 거리.
따라서 성팍의 자체방어도 목판만의 성분으로는 막기가 힘들어 적어도 10∼15㎝두께의 목판에 2∼3㎜두께의 철판을 문에 붙였다.
그예로 태조∼세종연간에 축조된 서울남대문과 광해군∼인조때의 남한산성, 그리그 정조때 세워진 수원장안문에 남아있는 철갑성문비를 들수가 있다고 박교수는 밝혔다.
또 실제 전투상황을 보여주는 그림에서도 철갑성문비의 필요성은 입증된다. 곧 임난당시를 그린 병풍화『임진난·평양성공격도』 (국립박물관소장) 에도 칠성문앞에서 총통을 발사하고있는 모습이 철갑문과 대조를 이룬다는 것. 현재 성문비에 남아있는 철갑은 대개 60×20㎝의 장방형으로 두께는 2∼3㎜정도다.
결국 이조성문의 철갑은 격식상 큰 변화없이 구한말까지 계승되고 이조화기와 함께 공존한 철갑양식의 전형이되었다.
박교수는 화공에 대한 철갑의 이같은 필요성에 따라 이순신은 그자신과 수군의 창의로 철갑으르된 수3척의 실전용 거북선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주강한다. 또 이충무공전서에 기록돼있는 전라좌수영귀선도의 선형개념을 단순화하여 박교수는 철갑선의 모형을 그리고 철갑을 위에 쓰였을 철소요량을 추정했다.
그에 따르면 이조성문비와 이충무공전서의 거북선 크기에 따라 모형을 만들어 보면 갑판철갑과 못에 소요된 철의 전체량은 척당 4∼7t으로 보인다는 것. 여기에 양옆의 총쏘는 구멍을 보호하기위한 장갑을 고려한다면 1t 내외가 추가로 쓰여 1척에 5∼7t의 철이 필요한 셈이다.
또 척당 3천장 정도에 달하는 철판이 쓰였다는 것은 전설상의 얘기가 아니라 실제 가능하다고 박교수는 입증했다.
이같은 박교수의 철갑주강은 학계에 새로운 「거북선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주목된다.
지금까지 철갑거북선의 주강은 ▲우리 기록이 없다 ▲왜군은 조총이 주였기 때문에 목판만으로도 방탄·방화가 가능하였다 ▲구전적인 철갑전설은 신화비슷하다 ▲왜측기록을 착각, 또는 왜곡됐다는등의 이유로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방인철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