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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띠의 해…기미|3·1절이 "환갑" 맞는 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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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79년은 간지로 말하면 양띠의 기미년. 60년전 기미년에는 한국인이 모두 일어나 일제에 항거해 민족의 자주독립을 외쳤던 3·1독립운동의 해다. 1859년 기미년(철종10년) 에는 부산에 왜관이 거창하게 수축된 직후이며 이해 영국의 배 2척이 동래에 들어 왔었다.
바꿔 말하면 미구에 불어닥칠 개화의 물결이 이 무렵부터 서서히 조짐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었다.
역사를 더 소급해보면 6백년전 1379년은 고려왕조의 말기인데 왜구가 한반도의 남서 해안 지방으로 자주 올라와 괴롭힐 무렵이었다. 그래서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마저 선산으로 피난시킨 일이 있었다.
1천2백년전 기미는 서기 779년. 곧 신라 혜공왕 때인데 일본에서는 신라 전성기의 찬란한 문물을 받아들여 나랑문화를 꽃피웠던 시대다. 신라에서는 혜공와대에 여러 차례 역모사건이 일어나 왕은 이 해에 백좌법회를 열어 나라의 평안함을 기원했다.
이같이 60년을 단위로 생각하는 관습은 음양오행 문화권 내의 공통된 관념인데 그 간지 자체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만큼 과학적 근거를 가진 것은 아니다. 더구나 십이지를 동물로 상징시키는 것은 중국 전국시대 이래의 사상인데, 한국에 있어선 습관적으로 그렇게 붙여 부를 뿐, 한국 고대의 사상 체계와 유관한 것은 아니다.
십이지의 동물 가운데 미에 해당하는 양은 본시 한국에는 없던 가축이고 세화나 민담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산양은 더러 약용동물로 옛 기록에 보이지만 십이지의 면양은 한국의 민속과 사실상 무관한 동물이다. 『양같이 순하다』는 말도 실은 금세기에 들어와 생긴 서구식 표현이다.
서구어의 양이란 말은「산스모리트」의「아비」에 어원을 두고있으며 약 1만년전 중앙 「아시아」고원지대에서 먼저 가축화 됐으리라 보고 있다. 구약성서에 의하면「아벨」이 양을 치며「카인」의 토지를 경작했다는 고사도 있다.
「이스라엘」사람들의 생활에선 양이 재산을 표시하는 수치가 되며 신의 제단에 바치는 중요한 희생동물로 돼있다. 일반적으로「유럽」각 민족 사이에서는 양이 미래를 예지하는 영험한 동물로 여기며 새벽길에 양떼를 만나면 대길하다고 믿고있다.
인도·중국·몽고에 있어서도 양의 역사는 퍽 오래다. 특히 중국에서는 양의 암수·뿔의유무·나이·털 빛깔·산모량 등에 따라 여러 가지 명칭이 붙어져있다. 양은 영추로서 문자나 고사에 여러모로 등장되곤 하는데 한대 와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길양명문은 바로 대길양의 표현이다. 곧 양은 상서로운 것과도 통한다. 양은 유순하고 인내심 강한 동물이며 섬세한 동물섬유를 생산하는 점에서는 유일한 가축이다.
그 품종은 육용·모용종에 걸쳐 2백여종이 있으며 전 세계에 12억마리가 사양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60∼70년전부터 사육되기 시작해 근년에 이르러 제주도에서 목장 규모로 사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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