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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바로 안서면 진짜 개혁 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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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방송이 없었다면 대통령이 되었을까-.

정치권력을 상징하는 대통령과 방송과의 함수관계를 묻는 어려운 수학문제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고백한 말이다. 그렇다면 같은 언론이면서 왜 신문은 매번 개혁의 대상으로 비난을 받고, 방송은 권력과 그렇게 친하게 된 것일까.

현재 전국을 커버하는 TV 채널 4개 중 3개는 정부가 소유하고 있다. 민주국가에서는 정부가 방송사를 만들었다 해도 탄생 후에는 '방송의 독립'이라는 원칙이 지켜지기 때문에 국영 대신 공영이라는 말을 쓰지만, KBS가 전액 정부 출자로 만들어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반면 선진국은 어떤가. 일본의 NHK는 국가의 출자와는 무관한 특수법인으로 규정돼 있고, 영국의 BBC는 의원내각제 때문에 의회가 제정한 법률의 영향을 받지 않게끔 국왕의 관리하에 놓이는 특수한 지위다.

또 독일은 나치 시대의 교훈을 바탕으로 어떤 특정 정치세력도 방송을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방송을 주 정부의 고유권한으로 나누고 16개 주 정부가 체결한 국가협약에 따라 방송사(ARD.ZDF)를 만들고 있다.

즉 세계 각국은 공영방송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나름대로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는 2000년, 통합방송법을 만들면서 KBS의 독립을 상징하는 'KBS 법'을 폐지함으로써 공영방송사인 KBS 역시 여타의 방송사 중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서울 MBC도 외형상 주식회사 형태지만 두개의 공익재단법인이 주주가 됨으로써 정치적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더욱이 정부는 아리랑TV.KTV.YTN 그리고 KBS를 통해 출자한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 등 다양한 매체의 대주주 내지 소유자이므로 정치권력이 쉽게 영향력 확대를 욕심낼 만한 구조다.

여기에 방송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막아줄 방패막이 구실을 기대하면서 만들어진 방송위원회의 경우 위원 개개인이 독립된 기관으로서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여당이 방송위원회 과반수를 차지하게끔 법으로 보장돼 있다. 특히 정부는 돈 한푼 출자하지 않고 특수법인으로 '한국방송광고공사'를 만들어 광고판매를 독점케 함으로써 어떤 TV 방송사도 광고 시장에서 마음대로 광고 대행사와 접촉해 광고요금을 정할 수 없게 하였다.

민영 방송사조차 자신의 수입을 좌우할 수 있는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돼 있는 셈이다.

방송이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어떻게 법과 제도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외국에서는 이미 진부한 주제다.

또 그런 우려가 없기 때문에 통신회사와 방송사업자, 그리고 다양한 매체의 방송사업자들끼리 살아남기 위한 인수.합병 문제에 전념할 수 있는 행복한 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남만 부러워할 것인가. 방송이 제대로 비판하는 바른 언론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요구를 잘못된 정치문화 탓만 하며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시점에 와있다.

방송을 둘러싼 잘못된 법과 제도가 바로잡히고 방송이 바로 서지 않는다면 국민 스스로 무엇이 진짜 언론개혁의 대상인지를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방석호 <홍익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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