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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이 쓴 전기로 불에 「카뮈」 선풍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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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프랑스에 느닷없이 『「카뮈」 현상』이라는 주목할 만한 선풍이 불고 있다. 「사르트르」와 함께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가였으며 57년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알베르·카뮈」가 그의 사후 18년만에 학생층을 중심으로 하는 청년 지식층간에 폭발적으로 읽히기 시작한 것은 서구 문명의 흐름과 밀접한 연관성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카뮈」 현상의 계기가 된 것은 지난 11월 초순 「뉴욕·타임스」의 「유럽」 문학 기고가 「허버트·로트먼」의 「카뮈」 전기의 불역판이 나오고부터다.
「카뮈」는 오늘날까지 프랑스 지식인들의 무시 내지는 무관심의 대상일 뿐이었다. 「카뮈」 전기가 「프랑스」인이 아닌 미국인에 의해 처음 출판된 사실만 보아도 그렇다. 47년의 짧은 일생이 과장과 삭제 없이 7백여「페이지」에 펼쳐진 이 전기와 함께 그의 희곡 『가리큐라』와 『정의의 사람들』의 「파리」 공연이 공전의 대성황을 거두는 현상은 분명코 이변이 아닐 수 없다.
현대가 「카뮈」에게 진정한 친선을 돌리게 된 동기를 제공했음이 분명하다. 한국전이 계기가 된 50년대의 동서 냉전 상태 속에서 좌파만이 올바른 지성으로 보였던 「프랑스」 지식인들은 「카뮈」의 「스탈린」 체제 비판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미 「사르트르」는 52년 『「카뮈」는 추상적 관료주의를 지지했다』고 비판하고 『끝장난 계급을 위한 철학』이라고 매도해 버렸다. 이것이 유명한 「카뮈」∼ 「사르트르」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이들의 우정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로트먼」의 전기는 『있었던 그대로의』 일생을 재구성함으로써 이미 20년 전에 살인적·전제적 독재주의를 최초로 비판한 선지자적 지위를 부여했다. 「카뮈」에 있어서 백색이든 적색이 독재란 모두 거부해야만 하는 악으로 규정했고 「히틀러」와 「스탈린」이 동시에 악이었던 것이다.
이같은 그의 정치 철학은 권력을 다룬 『가리큐라』와 「테로리스트」가 주제인 『정의의 사람들』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카뮈」는 지식인의 행동을 ①악을 알고 이를 규탄하라 ②거것말을 하지 말고 자기의 무식을 고백할 줄 알라 ③지배하기를 철저히 거부하라 ④어떤 구실로, 비록 일시적이라 해도 모든 독재주의를 거부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역사를 뒤흔들 대하소설 『최초의 사나이』를 미완성인 채 유작으로 남기고 간 「카뮈」의 재발견이 프랑스 지식인들에게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은 앞으로의 방향을 암시하는 점이 많다.
「카뮈」는 과거 각기 다른 다양한 비판을 받았었다. 우파는 공산주의자로, 공산구의자들은 반동으로, 기독교인들은 그를 무신론자로 보았다.
「카뮈」에 대한 이러한 「보이·스카우트」적 비난을 지우기에는 20년이 걸렸다는 「르·몽드」지의 평가는 결코 우연이 아닌 듯 하다. 【파리=주섭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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