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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과표의 인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선거가 끝나자마자 부동산 과세 시가 표준을 대폭 올린 것은 아무래도 석연치 못하다.
확실히 현 부동산 시가 표준이 실세보다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2년이나 방치했다가 전격적으로 토지를 26·5%, 건물을 30%나 올렸으니 선거 때문에 유예했던 것을 한꺼번에 받으려 한다는 오해를 살만도 하다.
부동산 과표는 바로 제2의 세율이라 볼 수 있다. 시가 표준이 오르면 세율은 손대지 않아도 재산세 등 지방세는 정비례하여 오른다.
내년부터 부동산 매매에 있어 관인 계약서 사용이 의무화된다는 것과 겹쳐 지방세 부담이 실감나게 무거워질 것이다.
벌써 내무부는 내년도 지방세 징수액을 금년보다 23·6%가 증가된 4천7백억원으로 책정했다 한다.
취득세·등록세·재산세 증수는 일반 가계 부담의 가중으로 직접 나타난다.
부동산 과세는 76년부터 인상되지 않았으나 그동안 토지는 82%, 건물은 80∼1백%가 올랐으므로 이에 맞춰 시가 표준을 현실화하는 것이라고 내무부는 밝히고 있다.
내년의 과표 인상율이 평균으로 토지 26·5%, 건물 30%이지만 지역에 따라선 크게 오른 곳도 많다.
특히 서울의 경우엔 평균 49·3%나 오르며, 강남 일부 지방은 4백%나 오른 곳도 있다.
아무리 비현실적으로 낮은 과표를 실세화하는 것이라 하지만 1년에 세금을 4배씩이나 더 나오게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는 경제에 너무 충격을 줄뿐아니라 가계가 이에 적응할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새 경제 「팀」이 안고 있는 가장 시급한 문제가 「인플레·무드」의 제거인데 정부 세금부터 몇배씩 걷는다면 누가 정부의 물가 안정 노력을 믿으려할 것인가.
지방 재정의 세수 증대를 위해선 과표 인상이 불가피하고, 그 명분도 있을지 몰라도 세금이 주는 물가 등에의 영향을 고려할 때 매우 위험한 조치라 할 수 있다.
지난 「오일·쇼크」 때 경험한 바와 같이 값이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오르는 경우 보다 일시적으로 대폭 인상되면 그 충격이 훨씬 심각하다.
특히 정부의 세금은 심리적으로 영향이 매우 크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 가장 우려해야할 사태 중의 하나가 합리적 계산의 상실이다. 물가나 임금 등이 타당한 근거에 의해 점진적으로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몇배씩 격변한다. 한 포기 2백원짜리 배추가 2천원까지 가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가격 격변기엔 모두가 적응할 능력을 잃고 가치 혼란·자포자기가 생긴다. 이 틈을 타고 투기와 조작이 횡행한다.
이를 앞장서서 막아야할 정부에서 일시에 재산세 등을 몇배씩 올리는 등 극약 요법을 쓰는 것은 이유야 어떻든 삼가야 할 일이다.
과표와 실세가 너무 유리되어 있으면 이를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조장하는 것이 소망스럽다.
내년도 물가 상승율을 10%선으로 잡고 있으면서 일부 세금을 한꺼번에 그토록 많이 올리겠다는 것은 도시 납득하기 힘들다.
지난 2년 동안 재산세의 과표를 안 올린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왜 갑자기 바뀌게 되었는지 명확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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