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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球와 함께한 60年] (7) KBO의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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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6개 구단과 교섭을 끝낸 나는 이상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프로야구를 운영해 나갈 기구의 조직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프로야구를 이끌어갈 총재로 서종철 전 국방장관을 추대,정부의 재가를 얻어냈다(서종철 초대 총재의 추대 경위와 그의 업적 등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하게 소개하겠다).

여기서 잠깐 한국야구위원회(KBO)라는 명칭이 결정된 과정을 설명하겠다. 1981년 12월 11일 창립총회를 할 때만 해도 그 명칭은 '한국프로야구위원회(Korea Professional Baseball Committee)'였다.

그러나 총회를 끝낸 뒤 서종철 총재는 "아마추어 야구 기구에 '아마추어'라는 말이 들어 있던데 우리가 굳이 '프로'라는 말을 넣을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야구'라고 해서 대표성을 지니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지적했다.그 뜻을 수용해서 창립총회 직후 KPBC는 KBO(Korea Baseball Organization)로 바뀌었고, 지금까지 20년 넘게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기구의 명칭이 됐다.

나는 이상주 수석에게 내가 구상한 KBO의 조직도와 인원 구성 계획을 설명했다.그리고 구단 운영에서 적자가 예상되는 만큼 KBO도 최소한의 인원과 최소한의 경비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며칠 뒤 이상주 수석으로부터 "청와대로 들어오셔서 저 좀 만나주시죠"라는 연락이 왔다. 이수석은 나에게 "이선배께서 총장을 맡아주셔야겠습니다"라며 나에게 사무총장직을 제의했다.

나는 당초 창립의 초석을 놓는 것으로 만족할 생각이었고 실무를 맡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그러나 이왕 시작한 일 힘껏 한번 해보자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기에 사무총장직을 받아들였다. 6개 구단 탄생의 동반자 역할을 한 이호헌씨는 사무차장을 맡게 됐다.

나는 야구행정 최고의 베테랑들에게 실무를 맡겼다. 당시 KBO의 뼈대를 이루는 주요 부서는 운영, 총무, 홍보였다.

운영부장은 신현철씨에게 맡겼다.신부장은 내가 대한야구협회 전무로 있을 때 기록부장을 역임했다.야구 실무에 정통하고 개혁성도 뛰어나 최적임자라고 생각했다.

총무부장은 서총재의 비서실장도 겸해야 했다.그래서 군 출신이 좋다고 판단,수도경비사령부를 거쳐 부산 MBC 이사를 역임한 안의현씨를 낙점했다.

KBO 출범 때 빼놓을 수 없는 큰 일을 한 사람이 김창웅 초대 홍보실장이다.김실장은 경기고-서울대 국문과 출신으로 빼어난 글솜씨를 지녔고 당시 서울신문 TV가이드 부장으로 재직중이었다.

야구를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내 영입 제의에 금방 동의했다.김실장은 서종철 총재의 프로야구 출범 축사도 썼고, 당시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프로야구 엠블럼과 마스코트도 만들어냈다. 김실장의 지휘로 만들어진 엠블럼은 지금도 KBO와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고 있다.

당시 서울 충무로에 있었던 해냄기획에서 제작한 이 로고는 파랑,빨강,노랑의 삼색 태극이 야구공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한국을 상징하면서 프로야구를 통해 서로 뭉쳐 민족화합을 이루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프로야구 로고를 제작해준 해냄기획 정성환(전북대 산업디자인과 교수),김인석(TBWA광고대행사 상무),김영기(A&B커뮤니케이션 대표)씨에게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한다.

이용일(前 한국 야구위원회 사무총장)
정리=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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