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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길, 총장이 답하다] 박영식 가톨릭대 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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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박영식(60) 가톨릭대 총장은 매 학기 주재하는 교수 전체회의에서 “변하지 않으면 여러분 중 절반은 학교를 떠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를 만나기 직전 가톨릭대 한 교수에게 전화해 “박 총장이 교수들을 다그친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교수는 “죽겠다”면서도 “대학이 좋은 방향으로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어 흐뭇하다”고 답했다.

 교수의 말대로 가톨릭대는 2009년 박 총장이 취임한 뒤 변화의 속도가 부쩍 빨라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약학대학을 유치했고 대학교육역량강화·학부교육 선도대학(ACE)·산학협력 선도대학(LINC) 등 ‘3대 대학 재정 지원사업’을 연속으로 따냈다. 지난 10일 경기도 부천 성심캠퍼스 총장실에서 만난 그는 신부복을 입은 사제답지 않게 에너지가 넘쳤다. 인터뷰 내내 “대학은 바뀌지 않으면 죽는다”고 강조했다. 

-총장이 지향하는 대학은.

 “대학 졸업자가 많이 늘었다. 그런데 지식은 늘었을지 몰라도 배운 것을 잘못 쓰고 있지 않나 싶다.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을 초래한 사람도 대부분 대학 졸업자다. 그럼 어디부터가 문제인지 대학부터 뜯어봐야 하지 않을까. 대학에서 배운 걸 단순히 써먹는 게 아니라 올바로 쓸 수 있는 사람을 키워내야 한다. 그걸 나는 ‘대학 3.0’으로 잡았다. ‘대학 1.0’이 좋은 교육을 하는 대학, ‘대학 2.0’이 학생들이 좋아하는 대학이라면 ‘대학 3.0’은 다툼·분쟁 대신 소통·화합할 윤리적 리더를 키워내는 대학이다.”

 -윤리적 리더를 키워내기 위한 노력은.

 “2012년 ‘윤리적 리더 육성 프로그램(ELP) 학부대학’을 출범시켰다. 이익만 좇는 장사꾼이 아니라 기업에서 금고 열쇠를 맡길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게 목표다. 1~2학년 때 신청받아 졸업할 때까지 인간학·베나생(베풂·나눔·생명)·사회봉사 등 인성·영성을 높일 수 있는 교과목을 25학점 이상 이수하고 문제해결 능력 평가 등에서 일정 점수를 받으면 장학금을 준다. 의무가 아닌데도 올 3월 기준 전교생의 57%가 ELP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이공계 비중이 크지 않은데도 산학협력선도대학에 연속 선정됐다.

 “흔히 산학협력이라고 하면 이공계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인문사회 중심의 산학협력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DC(디지털 콘텐트)융합센터에선 최근 미디어기술콘텐츠학과 중심으로 국문학·철학과 교수와 학생, 그리고 ‘가족회사’인 영화제작사가 뭉쳐 영화 ‘황구’를 만들었다. 우리 대학과 이렇게 협력하는 가족회사가 527개다.”

 -가족회사와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직원 5명 규모 작은 회사는 아무리 노력해도 신기술을 만들기 어렵다. 좋은 인재를 뽑고 싶어도 투자 여력이 없다. 이럴 경우 가톨릭대와 가족회사 관계를 맺으면 대학이 컨설팅을 해 주고, 기술도 공동 개발한다. 가족회사 간부는 ‘현장교수’로 초빙돼 학생들에게 실습교육을 시켜준다. 실습생 일부는 가족회사에 취업하는 선순환이다.”

 -대학의 사회공헌에 대한 기대가 크다. 지역사회와 연계한 산학협력도 하는지.

 “학교 인근 1호선 역곡역 앞 재래시장 개선도 산학협력의 성과물이다. 재래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경영학 교수·학생을 투입해 상인과 손님을 설문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받아 낡은 시설을 현대식으로 고쳤다. ”

 - 졸업생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학생을 취업시키려면 교수부터 바뀌어야 한다. ‘내 삶을 던져서 연구했고, 학위를 받아 가르치는 것으로 교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교수가 아직도 많다. 그래선 안 된다. 대학의 모든 과목을 취업과 연계시켜야 한다. 대기업이건, 언론사 출신이건 사회 경험이 풍부한 분은 누구라도 겸임교수나 현장교수로 임용해 취업에 도움이 되는 수업을 시킨다.”

2011년 약대 출범 … 4년간 전액 장학금

 -정문을 지나는 길에 ‘김수환추기경 국제관’을 봤다. 학생들끼리 영어를 쓰는 기숙사라던데.

 “‘인바운드’(inbound) 국제화를 추구하는 기숙사다. 1100명 수용 규모로 2009년 8월 문을 열었다. 외국인 교수, 학생을 기숙사로 불러들여 한국 학생들이 굳이 외국에 나가지 않고도 외국어를 배우도록 했다. 집중영어 기숙프로그램(GEO)을 운영한다. 영어 회화 수업뿐 아니라 외국인들과 동아리 활동을 통해 24시간 영어로만 소통하도록 한다. ”

 가톨릭대는 의대로도 유명하다. 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은 ‘빅5 대형 병원’으로 꼽힌다. 그런데 박 총장은 다른 꿈을 꿨다. 취임 직후부터 매달린 끝에 2011년 약대를 출범시켰다.

 -후발 주자인 만큼 약대 교육을 차별화해야 하는 부담감이 클 것 같다.

 “약을 잘 아는 ‘임상약사’와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약사’를 동시에 배출하는 게 가톨릭 약대의 차별점이다. 성모병원에서 의사가 진료할 때 약사도 옆에 두고 교육시킨다. 그럼 둘이 상의하는 과정에서 무슨 약을 처방할지 답이 나온다. 그게 임상약사다. 의학·약학·생명공학·자연과학이 협력해 신약개발도 한다. 이론·실습교육 비율이 5대 5, 학생·교수 비율은 2대 1이다. 신입생 전원에게 4년 장학금을 준다.”

 -올 하반기 중 대학 장기발전 계획인 ‘2020 플랜’을 발표한다는데.

 “가톨릭 교육 이념을 확고히 하면서 다른 대학과 차별화하기 위해 ▶대학 발전동력 확충 ▶우수학생 확보, 사회진출 지원 ▶탁월한 교육·연구·산학협력 ▶대학 시스템·구성원 역량 강화 ▶대학 특성화 등 주제에 따라 90여 개 세부 실행과제를 만들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 비서 출신 … '저녁 두끼' 유명

 -남은 임기 동안 과제는.

 “대학 구조개혁이 만만치 않다. 예컨대 학생을 20% 감축하라는 건 교수·교직원도 20% 줄이란 거다. 게다가 등록금은 앞으로도 동결하거나 내려야 한다. 대학 운영은 어렵고, 수입은 줄어드는 모양새다. 우리 같은 중소 규모 대학은 학생의 교육 선택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해야 산다. 그러려면 개별 학과제보다 학부제와 융복합 전공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전공 숫자가 많은 대형 대학보다 중소 규모 대학에 더 적합한 생존전략이다. 가톨릭대를 강소대학으로 키워내겠다.”

만난 사람=김남중 사회1부장
정리=김기환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박영식 총장=1954년 경북 김천의 6대를 이어온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82년 사제 서품을 받고 신부가 돼 김수환 추기경 비서로 일했다.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97년부터 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9년 1월 총장에 취임했다. 취임 후 6개월 동안 보직 교수들과 매일 오전 7시 조찬회의를 열고, 저녁을 두 끼씩 먹으며 사람을 만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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