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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빠빠·무정도시 그곳 … 알고보니 문 닫은 용마랜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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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왼쪽부터 크레용팝 `빠빠빠`, 뮤직비디오 JTBC 드라마 `무정도시`, SBS 드라마 `엔젤아이즈`.
범퍼카 등 놀이기구가 그대로 남아 있는 서울 망우동 용마랜드 . 영업 부진에 시달리다 2011년 폐업했다. 현재는 탈의실 등을 갖추고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에게 입장료(5000원)를 받아 관리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색색의 안장을 얹은 회전목마는 빛이 바래 쓸쓸해 보였다. 회전목마를 덮고 있는 천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빛이 새어 들어왔다. 바이킹은 운행을 중단한 지 오래된 듯 의자마다 녹이 슬어 있었다. 놀이기구를 이용하는 아이들은 없지만, 대신 세 명의 여성들이 회전목마 주변을 오가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서울 중랑구 망우동 용마산 중턱에 위치한 놀이공원 ‘용마랜드’의 풍경이다.

 버려진 놀이공원인 용마랜드가 드라마·영화나 사진 촬영지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1986년 문을 연 용마랜드는 영업 부진에 시달리다 2011년 폐업했다. 그 뒤 불량 청소년들의 아지트로 변했다. 경찰들도 출입을 꺼렸을 정도였다.

 용마랜드가 촬영장소로 주목받은 계기는 2013년 가수 백지영의 ‘싫다’ 뮤직비디오다. 이후 걸그룹 크레용팝의 ‘빠빠빠’ 뮤직비디오의 촬영지로 등장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비밀 접선지로 자주 등장했다. JTBC 드라마 ‘무정도시’, SBS 드라마 ‘황금의 제국’, 영화 ‘표적’ 등이 대표적이다. 2013년 방송된 JTBC ‘무정도시’에서는 경찰 비밀요원인 정경호(정시연 역)가 경찰청 수사국장 손창민(민홍기 역)과 비밀리에 접선해 정보를 나누는 장소로 등장했다. 무정도시의 장소 섭외를 대행한 로얄퀘스트 이손영 대표는 “버려진 놀이공원에 놀이기구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용마랜드가 유일하다”며 “서울시내라 접근성이 좋은 데다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좋아하는 제작자가 많다”고 말했다.

 뮤직비디오나 영화 등을 통해 자주 소개되며 최근에는 일반인들의 발길도 잦아졌다. 주말에는 20~30여 명이 사진 촬영을 위해 용마랜드를 찾고 있다. 주로 사진동아리에서 단체로 출사(出寫)를 오는 경우가 많다. 1시간 동안 회전목마 주변을 돌며 사진을 찍던 안진선(31)씨는 “옛날에 다니던 놀이공원이 떠올라 일단 반갑다”며 “특히 이 회전목마는 색깔이 수수하게 바래서 너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용마랜드를 관리하고 있는 윤모(60)씨는 “저기 있는 회전목마는 미국 찬스사 제품인데 우리나라에 한 대밖에 없는 것”이라며 “오래된 놀이공원 특유의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도색도 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엄마 오늘 오다가 동네 유원지에 갔었어. 그땐 정말 예쁘고 화려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망했더라고… 불빛 하나 없었어.’ 웹툰 ‘안나라수마나라’(하일권 작) 속의 대목처럼 이곳도 한때는 사람들로 붐볐었다. 서울 최대의 야외수영장, 눈썰매장 등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중랑구 주민 장정석(58)씨는 “90년 초반까지만 해도 사람이 많아 전등마다 불을 반짝거리며 영업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용마랜드는 롯데월드 등 대형 놀이공원이 생기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게다가 용마랜드 바로 밑에서 추진되던 스포츠센터 사업이 99년 무산되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공사 중 부도가 나 5층짜리 체육관은 골조만 완성된 채 방치됐고 수영장도 폐허로 변했다. 스포츠센터 개발업자 김모(62)씨가 2007년 개발권을 다시 따낼 목적으로 용마랜드 운영자에게 몰래 마약을 복용시켜 누명을 씌우려다 적발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

글=안효성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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