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동안 39.6%↑… 천장 모르는 지방 아파트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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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대구혁신도시 이전을 앞두고 그 근처로 이사할 계획인 공공기관 직원 김정환(48·경기도 성남시 분당)씨. 중학생 자녀의 교육환경을 생각해 ‘대구의 강남’으로 불리는 수성구 일대 아파트 시세를 알아보다 놀랐다. 전용면적 85㎡형 아파트값이 4억7000만원으로 수도권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수도권 집값은 별로 오르지 않아 실감하지 못했는데 대구 아파트값이 1년 새 1억원가량 올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처음 대구 집을 알아본 1년 전 구입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는 그는 집을 사야 할지, 전세로 들어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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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 집값이 천장을 모른다. 지난해 8·28대책 이후 회복세를 보이던 서울·수도권 주택시장을 다시 위축시킨 세월호 참사 등의 영향에도 끄떡없이 지칠 줄 모르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방 아파트값은 부산 등 5개 광역시 기준으로 2009년 5월부터 현재까지 62개월째 연속 ‘플러스’ 행진이다. 2000년대 초·중반 아파트값이 한 해 최고 20% 넘게 치솟던 서울·수도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장기 상승세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 들어 서울·수도권 아파트값은 4월 하락세로 돌아서 지난주까지 10주 계속해 내린 반면 지방은 4월 0.22%, 5월 0.14%의 상승률을 나타내며 여전히 오르막길이다.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부터 지난달까지 서울·수도권은 8.5% 떨어졌고 지방은 39.6% 올랐다.

 주택거래시장의 중심축도 지방으로 옮겨갔다. 2006~2008년 연평균 30만8000여 가구이던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이 2009~2013년 연평균 22만2000여 건으로 28% 줄어드는 동안 지방의 경우 30만6000여 건에서 38만3000여 건으로 25% 증가했다. 2009년부터 지난달까지 지방 아파트 거래량이 전체의 63%를 차지한다.

지방 분양시장도 뜨겁다. 닥터아파트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수도권에 분양된 1만5000여 가구에 1·2순위자가 모집가구 수의 21%인 3200여 명이 청약하는 데 그쳤다. 지방에선 1만여 가구를 놓고 6만5000여 명이 6대 1의 경쟁을 했다. 지방 주택시장 열기는 우선 공급 부족으로 수요가 넘쳐서다.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2005~2008년 연평균 16만여 가구이던 아파트 입주물량이 2009~2013년 10만여 가구로 35% 급감했다. 부산·대구·대전 등은 40% 줄었다. 국민은행 박원갑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지방 주택보급률(가구 수 대비 주택 수 비율)이 2000년대 중반 100%를 넘어섰지만 가구 수가 계속 늘고 집을 바꾸려는 수요가 있기 때문에 입주물량 감소는 수요 병목현상을 낳는다”고 설명했다.

 지방 개발사업이 활발해 지역발전 기대감도 높아졌다. 금융위기 이후 서울·수도권에선 대규모 개발이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지방은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계획에 따라 혁신도시 등이 대거 추진됐다. 혁신도시의 경우 전국 10곳에서 총사업비 10조원이 투입돼 진행되고 있다. 이들 혁신도시의 토지 보상금 5조원가량이 2007년부터 풀리면서 지방 주택시장의 돈줄이 됐다. 한국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금융위기 전 2기 신도시가 서울·수도권 시장을 달궜듯 지금은 혁신도시가 지방 시장의 불쏘시개가 됐다”고 말했다.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자 시세 차익을 기대한 외지 투자수요 가세가 눈에 띈다. 지방 5대 광역시 아파트 거래 중 광역시 이외 지역 거주자가 구입한 주택이 2006년 35%였는데 2009년 이후엔 41%로 높아졌다. 이 기간 광주는 30%에서 41%로 11%포인트 상승했다. 광주광역시 일곡동 일곡제일공인 강권수 사장은 “지방 전셋값이 매매가격과 차이가 적어 전세를 끼면 주택구입 비용이 적게 든다”며 “서울 등 외지에서 샀다가 가격이 오른 뒤 되팔곤 한다”고 전했다. 지방 5개 광역시의 아파트 매매가격 대비 전셋값 비율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72.5%이고 서울·수도권은 65.4%다.

 하지만 지방 주택시장의 열기가 계속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2009년 이후 집값 상승세를 타고 새 아파트 분양이 크게 늘면서 올해부터 입주물량이 크게 증가한다. 올해 16만여 가구, 내년 14만여 가구 등으로 2009년 이전 수준이다.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아무리 신규 분양이 많아도 입주 전에는 실제로 시장에 물량이 쏟아지는 것이 아니어서 공급효과를 실감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주택 구매력도 떨어지고 있다. 집을 사느라 돈을 많이 빌려서다. 2009~2013년 지방의 주택담보대출금액은 연평균 11조원인 56조원이었다. 2007~2008년 연평균 금액(5조8000여억원)의 두 배에 가깝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허윤경 연구위원은 “지방 집값이 거의 꼭짓점에 다다랐다”며 “금세 약세가 되지는 않겠지만 상승세는 둔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안장원·황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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