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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아시아 놈"과 한국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 「버마」로 양편에는 「망고」나무가 가로수를 이루고 있다. 이 길을 지나다가 안내를 맡은 관광회사 직원에게 「망고」가 익으면 길 가던 사람이 아무나 따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이지요. 하지만 「아시아」놈들이 익기 전에 모두 따먹어 버려서 우리는 익은걸 구경할 수가 없습니다.』 『나도 「아시아」 놈인데?』하고 되물었더니 『당신은 한국인이라면서?』라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프리카」인의 체험 속에서 「아시아」인은 식민세력의 하수인으로 와서 지금은 상권을 독점하고 있는 「얄미운」 인도인들 밖에 없다.
그러니까 뒤늦게 온 「아시아」인인 한국인에게 유리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프리카」인의 의식 속에 든 「코리언」의 「이미지」가 백지상태라는 점이다. 그걸 흰색으로 칠하느냐 또는 검정색으로 칠하는냐는 전적으로 새로 진출하는 한국인 스스로에 달려있다.
그런 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한국인이 백인들과 같은 태도를 취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 경우일 것 같다.
한 친절한 한국 부인의 안내를 받아 서「아프리카」의 촌락을 방문하고 오던 길에 길가 나무 그늘에서 그 부인이 준비해 온 주먹밥을 먹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이 고장에서 7년을 살아온 이 부인은 바로 앞자리에 앉은 흑인 운전사와 안내인에게 물 한 모금, 밥 한 톨 권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를 독한 여자로 보지 말라』며 그 아주머니는 「아프리카」인이란 줘도 고마운 줄 모른다고 설명했다.
무더위 속에서 눈이 멀뚱멀뚱해서 쳐다보는 두 흑인 앞에서의 그날 점심은 그래서 「아프리카」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식사가 되었다.
서「아프리카」에서는 주로 남자가 가정부 일을 한다. 18, 19세 된 건장한 흑인들이 아기도 보고 부엌일도 거들며 하루 12시간이상 일을 해주고 3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아간다.
한국 부인들에게 물어보면 한결같이 『저것들은 원래 저런 일 하는 종족』이라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그들과 같은 종족의 한 사무원에게 물었더니 『시골서 도시로 올라와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서 할 수 없이 하는 짓』이라고 극구 부인했다.
「아프리카」를 얕잡아 보려면 그런 거리는 얼마든지 있다. 회교도가 많아선지 일부다처제가 아직도 성행한다. 많은 사람들이 부인을 셋, 넷씩 거느리고 있으니 홀아비도 많을 것 같지만 『그래도 여자는 남아 돌아간다』고 한 「아프리카」인 운전사는 너털웃음을 웃었다.
또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맞아들이는 관습도 아직 성행하고 있다. 동생이 이미 두 부인을 갖고 있을 경우 형수는 세쨋번 부인이 된다. 실제로 그런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가 한나라의 부통령이 되어 자서전에서 버젓이 그 사실을 기술한걸 본 일이 있다.
그밖에도 엄청난 부패, 모든 사회조직의 비능률, 일반적인 무지 등 한국인이 우월감을 느낄만한 요소는 많다. 그러나 조금만 시야를 넓히면 한국과의 공통점도 놀랄 만큼 많다.
다같이 농경사회의 전통을 갖고 있어 인성이 비슷하다는 점 말고도 한국이 해방이래 30여년 동안 겪어온 국가 건설의 전통을 「아프리카」에서는 지난 15년 내 집중적으로 겪어오고 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목격하는 많은 부조리의 현장들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겪은, 또는 현재 겪고 있는 것과 상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신진 한국으로서는 「타잔」의 「정글」류의 엄청난 오도에서 벗어나 「아프리카」를 신중하게 접근해야 될 것 같다.
인도인이 오늘날 설익은 「망고」 따먹는 누명까지 덮어쓸 정도로 미움을 사고 있는 것은 바로 모르는 사이 백인의 눈을 갖고 「아프리카」에 접근했기 때문이 아닐까?
【루사카=장두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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