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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여공」의 가슴에 동탑 훈장이…|「수출의 날」첫 영광 안은 이순이 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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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30일 상오 세종 문화 회관에서 열린 제15회 수출의 날 기념식 자리. 최규하 국무총리가 목에 동탑 훈장을 걸어주는 순간, 여공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은 훈장 수여가 다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단상에 앉아 있던 감사원장·국무위원들도 눈시울이 뜨거워져 수건을 꺼내는 장면을 보였다. 그리고는 한결같이 주인공의 인적 사항을 알아보려고 표창 공적서를 뒤적였다. 「메리야스」를 생산·수출하는 중소기업 태복 「메리야스」 공업사 (대표 김익명)의 수출부 여공 이순이 (28·종암 1동 77의 17l) 미혼. 입사 13년.
15회째 계속되어 온 「수출의 날」에 여공이 동탑 훈장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
이양은 『단상에 올라서니 13년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풀리는 것 같았다』면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양은 종암동에 있는 숭례 국민학교를 졸업한 직후 14세 때 태복 「메리야스」사에 입사했다.
맡고 있는 일은 제품 수출부의 「미싱」일.
지금까지 이양이 소속한 작업 조는 가장 불량품을 적게 냈을 뿐 아니라 품질 경진 대회에서 빼놓지 않고 1등을 도맡아 왔다.
이양은 2백40여명의 여공 (전체 직원은 3백40명)들 사이에 「언니」로 불리고 어떤 때는 선생님으로도 통한다.
가장 고참이면서도 조장 같은 감투를 마다하고 일선 여공으로 후배들과 함께 작업을 하면서 우수 제품 만들기에 애써왔다고 회사 간부는 소개했다.
13년 근무하는 동안 할아버지·할머니가 돌아갔을 때 외에는 결근한 일이 없었고 매일 30분 일찍 나와 후배들의 「미싱」일을 살펴 주는 것을 중요한 일과로 삼고 있다.
이양은 노동 일을 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동생 등 4식구의 생계를 돕느라고 아직 시집갈 생각을 못했다고 했다.
『이제는 나이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가 있으면 결혼을 해야겠다』고 이양은 얼굴을 붉혔다.
이양은 『내 손을 거쳐간 제품이 수출되는구나』하는 보람 속에 일의 싫증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이양은 한달 11만원의 월급을 받아 거의 가족 생계비로 쓰고 1만원을 떼어 적금을 해왔다.
그러나 한달 전 할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장의비로, 그리고 전세 값의 인상으로 모았던 60만원을 다 쓰지 않으면 안됐었다.
이양은 하루 평균 9시간 근무하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나간다.
태복 「메리야스」는 올해 1백90만「달러」 어치를 수출한다.
1백25억「달러」수출의 뒤 안에는 이양과 같은 무수한 여공들의 땀과 눈물이 결집되어 있다는 것이 15회 수출의 날에 다시 아로새겨진 셈이다. 【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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