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버지를 "○○씨"로 부르는 소송 법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부양료 청구소송을 담당하는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부모·자식 간 소송이 벌어지는 법정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자녀들이 부모를 무시하며 “○○씨”라고 호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일단 법정에 서게 되면 부모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사라져 버리고 소송 상대로서 증오의 감정만 남게 된다는 의미다. 간혹 부모 편을 드는 자녀와 아닌 자녀가 다툴 경우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진다. 재판에 앞서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가사조사관을 보내면 욕설로 응대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가사 소송 전문가들은 “궁박한 처지에 내몰린 부모들이 막판에 내는 소송이라 그런지 이긴다 해도 큰 상처를 남긴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부모·자식 간 극단적인 싸움을 막기 위한 대책은 뭘까.

전문가들은 두 가지 접근법을 제시한다. 일단 현재 경제력이 있는 부모들은 자식 부양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신들의 노후 생계비용을 감안하지 않고 자녀 교육비 등에 재산을 ‘올인’하거나 결혼비용 등으로 재산을 미리 증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임채웅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요즘 서울 거주 중산층 부모들은 자녀 1인당 사교육비를 보통 100만원 이상 쓴다”며 “이러다 보니 자녀가 2명만 돼도 노후 준비를 전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작정 자식들에게 퍼줄 것이 아니라 노후에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과거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모든 걸 다 준다는 희생정신을 실천해 왔다”며 “하지만 이제는 ‘다 주지 마라’는 캠페인을 전개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자녀들의 기본적인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현곤 법무법인 지우 변호사는 “최소한의 도리조차 하지 않는 ‘먹튀’ 자식들이 상당수”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또 하나는 부양을 받지 못하는 부모를 위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나가는 것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은 “노년을 자식들에게 맡기고 살 수 없는 시대가 된 만큼 국가가 책임지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며 “배우자 사망 시 상속분의 50%를 선취분으로 배우자에게 지급하는 쪽으로 민법 상속편 개정이 추진 중인데 이게 조속히 통과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기초보장연구센터장은 “재정 부담을 감안해야겠지만 당장 급한 부모들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더 넓게 보장하는 사회보장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민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