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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아베 고함 전술 … 김정일 "일본인 납치 사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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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002년 9월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왼쪽)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오른쪽)과 인사하는 모습. 관방부 장관이었던 아베 신조 총리(원 안)가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회담 직전 북한이 ‘일본인 8명 사망’이란 조사 결과를 내놓자 아베는 “믿을 수 없다. 당장 돌아가자”며 강경론을 폈다. [사진 일본기자단]

2002년 9월 17일 오전 10시30분 평양 백화원 영빈관.

 정상회담을 30분 앞두고 별실에서 대기하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부 장관(당시 직책)은 아연실색했다. 갑자기 북한 측으로부터 ‘납치 피해자 8명 사망, 5명 생존’이란 메시지가 전달됐기 때문이었다. 정상회담이 시작되자마자 고이즈미는 김정일 총서기에게 강하게 따졌다. 김정일은 의미심장한 미소만 띠며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물론 ‘납치’란 단어는 입 밖에 내지도 않았다. 이때까지 회담은 완전히 북한 페이스였다.

회담 난항 … 고이즈미에게 "일본 돌아가자”

 오전 회담이 끝나자 아베는 북한의 오찬 요청을 뿌리치고 고이즈미를 별실로 유도했다. “총리, 김정일이 납치를 인정하고 사죄하지 않는 한 아무리 사전에 일·북 공동성명을 내기로 약속했더라도 결코 서명하면 안 됩니다. 당장 일본으로 돌아가시죠.” 고함치듯 외치는 아베를 보며 일본 대표단 일행 모두 깜짝 놀랐다. 북한으로 출국 전 고이즈미와 아베는 “중요한 대화는 ‘필담’으로 한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도청장치가 있을 게 뻔했다. 하지만 아베는 그 약속을 철저히 무시했다. 그 ‘효과’는 오후 정상회담이 재개되자마자 당장 나타났다.

 “우리가 행방불명자라고 말해왔지만…음, 납치입니다. 특수기관 내 일부 인사들이 영웅주의에 빠져 그만…, 솔직하게 사과합니다.”(김정일)

 북한이 국제사회에 사과를 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북한이 도청을 통해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아베의 전술은 맞아떨어졌다.

 일본 외교 관계자는 “아베 총리만큼 북한의 협상술을 꿰고 있는 인물은 없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번 북·일 협상 과정에서도 협상 대표인 일본 외교관들에게 따로 코치했을 정도라 한다.

 의문은 여기서 나온다. “북한은 입만 열면 거짓말만 한다”던 아베가 북한의 ‘구두약속’ 하나만 믿고 북한에 경제제재까지 풀어주겠다니 말이다. 도대체 막후에서 무엇이 오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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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 관계자들에 따르면 아베는 복수의 대북 루트를 활용하고 있다. 첫째는 일본 언론에 보도된 ‘이하라-김정철’ 라인. 김정철(가명)은 국가안전보위부 소속으로 알려져 있다. 2002년 고이즈미 방북을 이끌어낸 ‘미스터 X’(2011년 숙청된 유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으로 알려짐)의 후계자인 ‘2대째 미스터 X’로부터 지시를 받아 협상을 총괄한 인물로 전해진다.

 북한의 군부 핵심과 선이 닿는 가나가와(神奈川)현 거주 조총련 출신 기업인 A의 역할도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70대인 그는 지난해 아베의 지시를 받고 북한을 몰래 방문한 이지마 이사오(飯島<52F2>) 내각관방참여(자문역)의 북한 체재 당시 평양에 함께 있었던 인물이다. 대북 소식통은 “A는 과거 두 차례 일본 당국에 체포된 적이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북한 지도부의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1기 아베 내각(2006년 9월~2007년 9월) 당시 북한과 극비 접촉했던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보국장도 협상 초기 막후에서 움직였다.

 예상과 달리 ‘자금’에 목마른 북한은 협상에 적극적이었다 한다. 1965년 일본이 한국에 제시한 5억 달러에 해당하는 지원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환율로 따지면 100억 달러(약 10조원)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북, 납북 일본인+요도호 납치범 송환 검토

 북한은 이르면 이번 주 ‘납치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한다. 양국은 사전 막후협상을 통해 납치자 송환을 둘러싼 ‘어느 정도의’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일 정부가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로 공식 인정하고 있는 17명(이 중 5명은 이미 일본으로 귀국) 중 2002년 9월 김정일이 직접 “이미 죽었다”며 사망확인서까지 내보였던 8명은 제외될 공산이 크다. 아무리 김정은이라 해도 부친의 말을 180도 뒤집기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협상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나머지 4명 중 마쓰모토 교코(松本京子·생존 시 66세)와 다나카 미노루(田中實·64)를 돌려줄 공산이 가장 높다. 이들은 김정일이 “입국한 사실이 확인 안 된다”고 말했던 만큼 송환해도 김정은에게는 큰 부담이 안 된다.

 결과적으로 납치 피해자 2~3명에다 일 정부가 ‘납치의 의심이 가는 행방불명자’로 지정한 860명(이 중 405명은 명단 공개) 중 일부, 그리고 요도호 납치범을 일본에 돌려주는 안이 북한 내부에서 모색되고 있다는 게 정보 관계자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요도호 사건은 일본의 적군파 조직원 9명이 70년 3월 30일 승무원 129명을 실은 일본항공 요도호를 공중에서 납치한 일이다. 이들은 북한에 망명했다. 현재 납치범 4명과 이들의 일본인 처 2명 등 6명이 북한에 생존해 있다.

메구미의 딸, 북·일 수교 카드로 쓸 가능성

 아베로선 골치 아픈 게 ‘메구미’다. 납치문제의 ‘아이콘’처럼 돼 있는 메구미를 북한이 돌려주지 않을 경우 “아베가 속았다”는 여론이 일본 내에 들끓을 가능성이 높다. 메구미의 생존 여부를 둘러싸고는 증언이 엇갈린다. 관방장관 출신의 한 거물 정치인은 본지 기자에게 “메구미는 죽은 게 거의 확실하다. 일 외무성도 이를 다 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반면 “살아 있지만 워낙 김정일, 김정은의 깊은 부분까지 알고 있어 결코 돌려보낼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아베의 ‘깜짝 카드’로 거론되는 게 메구미의 딸 김은경(가명 김혜경·26) 부부와 손자(1)를 일본에 보내는 아이디어다. 메구미의 부모인 시게루(滋·81)와 사키에(早紀江·78)가 “(메구미를 못 돌려받은 게) 억울하지만 역사의 비극으로 알고 이 정도에서 매듭짓는 게 좋겠다”고 하면 일본 내 여론도 돌아설 것이란 분석도 있다. 북·일 비밀협상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3월 중순 메구미 부모가 몽골에서 김은경 부부 및 손자와 ‘1차 상봉’한 것도 치밀하게 짜인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김은경 가족을 ‘국교정상화 협상’ 때까지 북·일을 자유롭게 왕래하도록 하면서 일종의 ‘북·일 수교 심벌’로 삼자는 것이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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