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서울 자전거대행진] 두 바퀴 '불새' 된 그들, 자폐 응어리 날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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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중앙일보·JTBC가 공동주최하는 ‘2014 하이서울 자전거대행진’에 참가한 5000여 명이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월드컵공원 평화광장에 이르는 21㎞ 구간을 달렸다. [오종택 기자]
자전거 시범 팀 ‘B3KOREA’가 15일 상암동에서 트라이얼 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김성룡 기자]

15일 오전 7시 서울 광화문광장. ‘2014 하이서울 자전거대행진’에 참가하기 위해 5000여 명의 시민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들 중에는 발달장애(자폐)를 가진 청소년과 그 부모들의 동아리인 ‘불새’도 있었다. 이날 오전 6시 서울 신대방동 시립 남부장애인복지관에서 모여 광화문까지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아 도착한 것이었다.

 불새 회원들은 2012년 4회 대회부터 6회 대회까지 참가했다. 올해에는 발달장애인 12명과 부모 22명, 복지관 직원 2명 등 모두 36명이 함께 달렸다. 기자도 직접 자전거를 타고 이들의 전 여정을 동행했다.

 신대방에서 광화문까지 짧지 않은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자전거 행렬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10년 이상 꾸준히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이다. 불새는 2003년 10월 남부장애인복지관의 도움으로 결성됐다. 12년째 이들은 매주 목요일 오전에 모여 자전거를 함께 타며 서로 소통한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연제민(27)씨도 불새의 초기 멤버다. 영화 ‘말아톤’의 초원이가 얼룩말에 집착하듯 연씨는 전동차에 집착한다. 복지관에서 출발하기 전에 그는 멀리 보이는 전철을 보며 “저 열차는 신형 전동차다”라며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산만해 보이던 연씨는 자전거에 올라타자 집중력을 발휘했다. 연씨의 어머니인 최금애(53)씨는 “청소년기에 접어들며 화를 많이 내고, 약 때문에 살도 많이 쪘는데 자전거를 탄 후 많이 좋아졌다”며 “자전거를 타며 참는 법을 조금씩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자폐) 청소년들의 자전거 모임 ‘불새’ 회원들이 자전거대행진 완주 후 상암 월드컵공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자전거 타기는 자폐 치료에 좋은 운동이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에 맞춰 목표 지점까지 달리고 나면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서다. 신호·차선을 지키며 규칙을 지키는 법도 배울 수 있다. 막내 회원인 유재용(15)군의 어머니 최수미(41)씨는 “우리 아이들은 화를 낼 때도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그대로 쌓아두는 경우가 있다”며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다 보면 대부분의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 다”고 말했다.

 ‘함께 하기’에 대한 개념이 없던 이준호(19)군은 자전거를 탄 뒤부터 남들과 보조를 맞추게 됐다. 지난해 여름 사람들과 제주도에서 함께 자고, 밥 먹고, 자전거를 타면서 팀(team)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는 것이다. 팀의 홍일점인 김아라(26)씨도 자전거를 타며 동생들을 챙기게 됐다. 아라씨의 아버지 김호기(55)씨는 “자전거를 타며 책임감과 사회성을 배우게 된 게 가장 큰 변화”고 말했다.

 불새 모임에 참석하는 회원들은 자전거 타기를 휠링(wheel-ing)이라고 부른다. 자전거 바퀴(wheel)와 힐링(healing)의 합성어다. 불새 회원들은 도착지점인 상암 월드컵공원에 도착한 후 다시 신대방동까지 페달을 밟았다. 오늘 하루에만 65㎞ 정도를 달렸다. 어머니 최금애씨가 말했다. “내가 나이가 들어 자전거를 못 타더라도 우리 아이가 계속 자기 힘으로 자전거를 타는 것, 그게 저의 바람입니다.”

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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