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366)제61화 극단「신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철승씨의 협조로 『자명고』공연은 성황리에 막을 내렸지만 좌익계 연극인들의 방해는 여전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좌익계 연극은 차차 위축되기 시작했다. 그들을 이끌만한 「엘리트」연극인이 없었는데다 작품이란 것이 온통 「부르좌」타도 운운…하는 구호일색이었으니 관객들이 식상한 것은 물론 혐오감까지 갖게된 것은 당연했다. 여기에다가 예술성이라곤 전혀 없는 「이데올로기」만 앞세운 각본의 빈곤도 하나의 이유가 됐다.
대중에게 소외당하며 무대가 좁아질수록 순수 정통극단에 대한 이들의 도전은 상대적으로 더욱 살벌해져 갔다.
더군다나 「극협」의 연극이 대중에게 정착될 기미가 보이자 나에게 협박장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붉은 「잉크」로 쓰여진 협박장은 한결같이 『반동연극을 중지하라. 아니면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몰살하겠다』등의 내용이었다.
아내의 불안은 대단했고 나 자신도 문밖을 나서기가 두려워졌다. 당시의 사회분위기로선 그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예측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나의 신변보호를 해준 사람이 훗날 방송계에서 이름을 떨친 후배 오사량(현서울예전 교수)이다. 20대 청년이었던 오사량은 「극협」연구생으로 입단했었는데 그의 집이 나의 집과 같은 돈암동이었다.
체격이 다부진데다가 의협심이 강해 그와의 동행은 마음이 든든했다. 그때의 인연으로 우리 사이는 변함없는 우정으로 뒷날까지 이어졌다.
오사량과 동행하던 어느날, 우연히 학생좌「멤버」였던 무대장치가 홍성인을 만나 대폿집을 찾게 됐다.
한창 술기가 오르는 판에 안영일 이강복 이서향 조영출등 좌익계 일당 대여섯명이 불쑥 나타났다. 작심하고 나타난 이들은 우리들에게 시비를 걸었고 급기야는 육탄전으로까지 번졌다. 그러나 중과부적, 우리는 녹초가 되도록 얻어 맞았다.
일당중 이서향은 오래전부터 연극을 같이 해와 죽마고우나 다름없었고 조영출은 동경유학시절 「쓰루마끼죠」(학권정)하숙방의 단짝 친구였다. 「와세다」대학생이던 조는 「조선악극단」의 전속작가로 가사와 대본을 썼는데 해방뒤 좌경해서 빨갱이극 『위대한사랑』을 발표하기도 했었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도 「극협」은 꾸준히 연극활동에 전념했다.
순수 신극예술을 이룩하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탄생한 「극협」은 창단준비 과정에서부터 그뒤 「신협」으로 이어지기까지 극단의 운명을 거의 내가 주관했었다.
나는 이 새 극단에 대해 몇가지 두드러진 제도를 도입했다. 그것의 하나가 단원들의 중지를 존중하는 민주주의 방식의 운영이었다.
이런 특색있는 제도 때문에 단장이란 직책이 없었으며 운영은 동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예술활동, 특히 종합예술의 하나인 연극은 단원들의 개성있는 화음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데, 과거 상업극단의 경우는 단장 한사람의 독단으로 인해 치명타를 입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1인 독재식 단장제도의 배격은 나의 굽힐 수 없는, 소신이었으며 지금까지 내 자신이 극단의 대표자가 된적은 한번도 없었다. 새로운 제도는 이것뿐이 아니었다.
연기자·「스태프」등 20여명의 전단원을 7등급으로 나누어 수익금의 배당제를 채택했다. 이것은 연대의식을 갖게 하고 일사불란한 「팀윅」과 수익의 공평한 배당을 목적으로 했던 것이다.
여기에다가 일제의 잔재였던 야찬비 지급을 없앴다. 몇푼 안되는 이 돈은 생활에 보탬이 되기보다는 한두잔의 대폿값이나 노름판 돈이 되기 십상이어서 정신면과 건강을 해치는 요인이 됐기 때문이다.
또 단체안의 질서와 건전한 분위기를 위해 단원끼리의 연애는 자유였으나 일단 결혼한 뒤에는 부부가 함께 출연하는 것은 금했다. 이러한 금지사항들은 내가 연극계에 투신한 뒤 피부로 느낀 악습들이어서 과감한 시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맹점은 있었다. 특히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배당제가 자승자박구실을 할줄은 꿈에도 몰랐다.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이 배당제로 인해 「극협」말년에는 채무에 시달려야 했었다.
매번 공연을 끝낼 때마다 그 즉시 수익금을 몸땅 분배함으로써 단원들의 수입이 늘어나고 생활이 안정되어간 것은 좋은 일이었으나 어려운 시기에 대비한 자체 예비비 적립을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