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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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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꽃집에 국화꽃들이 만발이다. 화분에 심은 것보다 떨이가 더 많다. 주인얘기론 떨이가 잘 나간다고 한다.
한 송이에 1백50원에서 2백원까지 한단다. 그러나 떨이로 한두송이나마 방안에 가을을 꽂고 싶은 젊은 여성들이 많은 탓이라 한다.
계절마다 맛이 다르다. 봄은 마음으로 느끼고, 여름은 몸으로 느낀다. 그리고 가을은 눈으로 보게 마련이다. 겨울은 마음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정녕 가을은 색깔의 계절이다. 우선 새빨간 사과를 앞세워서 나타난다.
서양에서는 희랍신화 때부터 「황금의 사과」가 대비적이다. 우리 나라 화가들의 정물화에도 사과가 잘 나오지만 서양의 정물화에는 사과가 나오는 일이 드물다. 「세잔」도 비교적 사과를 잘 그렸다. 그러나 그가 그린 사과는 새빨갛지가 않다. 색조를 그가 바꿔놓은 때문이 아니다. 우리처럼 새빨간 사과가 서양에는 없는 것이다.
가을은 이어 「오린지」색의 감(시)을 선보인다. 이것 또한 서양에는 없는 과실이다.
처음으로 감을 본 「프랑스」의 작가 「피엘·로티」는 『귤을 한결 길게 만든 것 같고, 그러나 귤보다 아름다운 색채의 금덩이처럼 빛나는 감』이라고 쓴 적이 있다.
몇 해 전인가 일본을 방문한 「이디오피아」의 「셀라시에」황제가 감을 처음으로 먹어본 다음에 그 맛을 잊지 못해서 감을 수입해서까지 먹었다고 한다.
서울에서도 자하문만 넘어서면 온통 감의 짙은 「오린지」색으로 물든 때가 있었다.
미처 익지 못한 떫디떫은 감을 주인 몰래 따먹으며 개구장이 소년들이 좋아하던 곳에 지금은 포장이 깔리고 「버스」가 다니고 있다.
감이 떨어질 무렵이면 산에 단풍이 지고, 홍섭이 누렇게 퇴색해서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이면 국화가 가을의 마지막을 화사하게 장식해 나가는 것이다.
나뭇잎은 최저기온이 6·7도까지 내려간 후 2주일쯤 후부터 붉게 물들어간다. 그러니까 단풍은 지금이 한참이어야 한다.
단풍은 늦더위가 오래 끌고, 가을에 비가 덜 내릴수록 색깔이 선명하고 아름다워진다. 올 가을에 단풍이 유난히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가을의 색깔이 너무나도 아름답기에 옛사람들이 자연에 손을 댈 생각을 전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붉은 사과도, 단풍도, 감도 못 가진 서양사람들은 마음놓고 자연을 파헤쳐 나가고.
그러나 우리에게도 지금 모든게 귀하다. 가을의 아름다운 색깔들은 우리 등뒤에서만 익어가고 또 시들어 가는가보다. 그저 떨기 한 포기 1백50원짜리 국화를 살까 말까 망설이는 소녀의 마음속에만 가을은 남아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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