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유괴와 생명보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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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5천만원의 몸값을 요구한 어린이 유괴사건이 경찰의 개가로 33일만에 해결됐다.
지난말 15일 부산에서 유괴됐던 국민교2년생 정효주양이 18일밤 무사히 부모품에 안겼고 범인 매석환도 붙잡혔다. 모처럼 시원한 사건해결이라 아니할 수 없다.
어린이 유괴사건은 항상 유괴된 어린이의 생명을 보호하는데 최대의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경찰 수사에 어려움이 많다.
또 부모의 입장에서는 살을 깎는 용기와 가슴을 죄는 인내가 요구된다.
거기다 신문이나 방송의 보도에도 많은 문젯점이 있다. 사건 발생과 수사진전 보도에 급급하다 보면 유괴범의 신경을 자극하여 어린이의 생명을 해칠 위험이 많은 것이다.
이런 여러가지 어려운 점을 극복하고 이번 유괴사건이 깨끗이 해결된 것은 조심스럽고 끈질긴 경찰수사와 부모의 용기, 그리고 언론의 긴밀한 협조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어린이 유괴사건이 일어나면 당사자인 부모들은 먼저 유괴범의 협박에 굴복,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기가 쉽다. 그러다가 범인에게 시달릴 대로 시달린 끝에 결국은 어린이마저 잃고 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거 희규군사건(63년) 이나 근하군사건 (67년) 등이 모두 비극으로 끝난 예다. 범인이 검거되었어도 이미 어린이는 희생된 뒤였다.
경찰은 이번 효주양이 유괴되자 상부에 보고하려던 내용을 보도진들에게 정확히 알려주고 효주양의 생명에 해가 가지않도록 보도를 보류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건이 완전 해결된 후에야 그 전모가 보도됐다.
33일이라는 짧지 않은 유괴기간동안 조용하게 이루어진 부모·경찰·언론의 협조는 앞으로의 어린이 유괴사건 수사에 있어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다.
그러나 검문 검색의 헛점은 이번 사건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범인이 경부고속도로를 6번이나 왕래했는데도 한번도 검문이나 검색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목격자에 의해 검은색 승용차의 번호가 2천번대로 밝혀졌는데도 2천번대 승용차의 소재 수사만 했지 경부고속도로등의 검문소에 일제히 검문 자료가 시달이 안된 것을 보면 수사 체계의 과학화와 계통화가 아직도 틀이 잡히지 않은 것 같다. 2천번대의 승용차 검문검색을 철저히만 했어도 사건은 보다 빨리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이번 사건에서 범행도구로 활용된 자가용 차량의 영업행위와 무적차량의 운행등도 커다란 사회문제다.
치안본부는 뒤늦게나마 승용차의 소재 점검과 부적 차량 조사를 전국 일제히 했는데 자가용 승용차 이용의 범행은 날로 늘어나고 있어 이에 대한 단속은 항상 철저하게 계속 실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과 같은 어린이 유괴사건은 앞으로도 더욱 많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고도성장사회에서 자칫하면 가치관이 뒤바뀌어 일확천금의 꿈이 유괴등 범행동기로 빗나가기 쉽기 때문이다.
효주양 사건에서도 범인은 덮어놓고 사립국민학교에다 자가용이 기다리는 부잣집 딸을 노렸다.
범행 지능도 깜찍한 어린이의 모험심을 자극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갈수록 지능화 되는 유괴범의 수법이 놀랍기만 하다.
유괴사건 통계로 볼 때 유괴범이 검거되더라도 잡혀간 어린이가 희생된 경우가 60%이상이 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어린이 유괴사건은 우선 가정에서 철저히 예방되고 이번처럼 조용히 해결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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