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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의 꽃·새·나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는 5일 「자연 보호 헌장」 선포를 계기로 서울을 비롯한 11개 시·도를 상징하는 꽃·새·나무, 그리고 시범 가로수를 지정했다.
나라를 상징하는 국화나 국조가 있듯이 내 고장을 상징하는 도화·도조·도목을 갖게 된 셈이다. 이제부터 수도 서울을 상징하는 나무는 은행, 항도 부산을 대표하는 꽃은 동백, 그리고 산이 많은 강원도의 도조는 뻐꾸기가 됐다.
내 고장을 상징하는 꽃과 새·나무를 갖는다는 것은 애향심을 북돋우고 생활 속에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른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이번 도화·도조·도목의 지정에서 한가지 아쉬운 느낌이 드는 것은 중앙 정부가 이를 일괄 지정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지방 주민들이 내 것이란 애착보다 남이 타율적으로 정해준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지정에 앞서 주민의 의사를 집약하고, 관계 전문가들의 심의를 거친 만큼 주민의 뜻과 동떨어진 결정이야 있을 수 없었겠지만 내 고장을 상징하는 꽃이나 나무를 정하는데 까지 하향식이란 느낌을 줄 필요는 없지 않았나 하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또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시범 가로수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점이다. 가로수는 상징적인 도화·도조·도목과는 달리 그 심는 목적이 특히 실용성에 있어야 한다. 가로의 경관을 아름답게 하고 혼잡한 거리의 공기를 맑게 하며 행인들이 쉴 수 있는 녹음을 만들어 주는데 주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1차적으로 이런 요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수세가 강하고 수형이 아름다운 나무라야 가로수로서의 자격이 있다.
뿐만 아니라 요즘처럼 도로가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포장되고 자동차가 홍수를 이루는 시대에는 포장 도로 밑의 메마른 흙과 매연 공해 등 악조건을 이겨내고 싱싱함을 간직할 수 있는 나무여야 한다는 것이 불가결의 조건이다.
따라서 가로수의 선정은 나무의 특성을 살펴 신중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번 정부가 시범 가로수라 하여 거시한 나무 중에는 이 같은 가로수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수종이 눈에 뛴다.
예컨대 벚나무·수양버들은 공해에 약하며, 「플라타너스」는 추위에 수피가 갈라져 미관을 해친다. 수양버들은 봄철에는 솜털 같은 씨앗을 날려 호흡을 어렵게 하는 일까지 있고, 눈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따라서 시범 가로수가 앞으로 이 나무를 가로수로서 권장할 의도에서 거시된 것이라면 이는 신중히 재검토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알려진 바로는 우리 풍토에 가장 적합한 가로수는 은행나무를 따라갈 것이 없다.
은행은 수세가 강해 짙은 녹음을 만들고,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잎이 아름답고 깨끗하며, 무엇보다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좋다.
병해충은 물론 추위나 불·태풍에 모두 강해 관동 대지진 때 꿋꿋이 버틴 것은 은행나무 뿐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공해에 대한 저항력이 강할 뿐 아니라 자동차 배기 「가스」를 통해 분출되는 아황산 「가스」를 흡수, 공기를 정화하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고 한다.
이밖에 이 나무는 고급 목재로 유용하고, 열매는 식용·한방약으로 쓰이며 최근에는 은행잎이 항암제의 원료로 년간 1백만「달러」이상씩 서독에 수출되고 있다.
일찍부터 중국에서 은행을 「생명의 나무」로 일컬어 온 것만 보아도 이 나무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도목·시범 가로수의 지경에서 은행이 서울·경기·전북을 상징하는 나무로, 그리고 충남·전남·경북에서 시범 가로수로 선정된 것은 그나마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말고 전 가로를 은행나무로 가꿀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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