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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랑가의 방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70년대 들어 화랑이 격증됐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화상이라는 새로운 업종이 번창하고 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을 통틀어 반도화랑 하나밖에 없었다. 동란 후 미국 「아시아」재단에서 신설해 2년간 운영하다가 적자 투성이여서 이대원씨에게 위임시키고 보조해줬었다. 이씨도 59년부터 69년까지 견디다 못해 끝내는 문을 닫았다.
현재 화랑협회 회원은 27개화랑. 서울 19, 부산4, 대구3인데 광주·전주·대전에서도 곧 1, 2개소씩 가입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 가입자격은 연2회 이상 자체 기획전의 실적 있는 곳에 한하고 있다. 그밖에 점포에서 매매만 하는 이른바 화랑표구협회의 화상은 1백 군데를 헤아린다.
기획전을 갖든, 매매만 하든 그림은 괜찮은 상품으로 부각되고 있다. 증권이나 부동산처럼 투자대상이 되었다. 덩달아 너도나도 수집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당초는 골동상가에 몰러든 사람들인데 골동이 달리자 서화로 뻗치고 이제는 모두 현대화 쪽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래서 서울의 유명한 인사동 거리는 온통 그림가게로 변하다시피 했다. 지방에서도 이 현상은 매일반이다. 그중 일정기간의 특별전을 꾸며 공개하거나 임대전시 하는 곳이 화랑이다.
화랑이란 미술가의 제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생긴 특수한 직종이다. 작가가 작품을 들고 다니며 산보하는 번거로움과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해생긴 상행위다.
서구에선 맨 처음 잡화상이 취급하다가 16세기 「네널란드」에서 제도화하기 시작했다. 현대적 구조로 제도화된 것은 19세기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화랑들은 위탁판매의 영세한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작품을 대량 구입해 다 팔거나 작가와 전속계약을 맺지 못한 실정이다. 초대전이란 것도 말하자면 위탁의 변형일 뿐이다.
그런데 화랑이 난립되자 이른바 「잘 팔리는 인기작가」가 생겼다. 그리고 서로 인기작가에만 매달리다보니 엉뚱한 부작용이 생겼다. 이제는 고객에게 신경 쓰기보다는 인기작가의 비위를 어떻게 맞춰 「잘 팔리는 작품」을 유치하느냐에 더 바쁜 실정이다. 많이 팔아주고 비싸게 팔아줘서 주문을 더 많이 얻는 장사 속으로 쏠리고 있다.
화상 본연의 자세에서 영 빗나가는 상황이다. 그림 값을 스스로 조절 못하므로 유통구조가 엉망이 돼버렸다. 신인을 발굴해 뒷바라지 하기는 커녕 오히려 고객으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돼가고 있다. 그래서 고객들은 다시 작가와 직접 거래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도 몇몇 화랑은 꽤 재미를 보는 셈이지만 대다수의 화랑들은 어려운 지경에 빠져있다. 초대 전시는 이제 한계에 다다른 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미술이란 양식과· 안목으로 해결되는 것인데 세속의 들뜬 풍조에 휩쓸리다보니 화랑가는 커다란 소용돌이에 직면해있다. 판 그림을 책임질 처지도 못되면서 값만 기하급수로 치솟게 하여 과세협공을 면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버는 화랑은 특례라 하지만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을 다 태울 판국이다.
이 사태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림의 수요에는 한도가 있는 것이고 부동산「붐」처럼 서리맞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도 없다. 혹자는 안방고객에서 남자고객으로 바뀔 때까지 이 사태가 지속되지 않을까 보고 있다. 투자 대상으로 삼는다면 엄밀한 평가가 따라야 하는데 어차피 고객의 눈도 높아지게 마련이다.
몇몇 자가건물을 가진 화랑에선 더디지만 착실히 기반을 다지는 움직임을 보인다. 협회 측에서도 연내로 사회법인체 등록을 마춰 자제 활동을 벌일 전망이다. 또 해외의 화상들은 이제 극동에서 한국이 주요시장이 되리라 주목하고 있다. 국제적 화상이 들어올 경우 한국 화랑가의 무질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화랑가는 지금 과도기가 아니라 바로 전환점에 서 있는 느낌이다. <이종석 기자>

<나의 제언 작가-화랑의 전속계약제 등 아쉬워>
근대화상사 최초의 화상이었던 「뒤란·튀에르」화랑을 우리는 스승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가 잘 팔리지도 않던 인상파나 「바르비존」의 신인 화가들을 최후의 승리자로 만드는데 바친 집요한 용기는 눈물겨운 교훈을 준다.
우리 화랑들이 새로운 작가를 찾아내거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재능 많은 화가를 과감히 후원한다면 한계에 이른 현실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화상들이 귀족문화에 열성적으로 봉사한 것과 마찬가지로 시민문화에도 열성적으로 봉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상론을 펴는 것 같지만 가까운 장래에 다음과 같은 일을 했으면 한다. ①작가와 화랑이 전속계약을 맺어야겠고 ②경보제도가 도입되어야겠으며 ③화랑협회의 활동을 통하여 건전하고 단합된 미술시장을 키워 나가야 할 것이다. ④미술 평론가와 미술「저널리즘」의 적극적인 참여로 냉철한 여론을 진작해야겠다. ⑤해외교류는 꾸준히 그리고 인내심 있게 노력해야겠지만 특히 질과 값을 비교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화상이 해외 시장과 「링크」를 가지면 국제사정을 배우게 되거니와 미술품을 수입·수출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김문호<한국화랑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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