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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미국의 소리」|신앙생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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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내가「미국의 소리」「아나운서」로서, 그리고 목사로서 평생을 살아온 것은 그 나름대로 까닭이 있다. 내 가정적인 배경이 그렇고 내 개인적인 믿음과 소망이 그 길을 걷게 했다. 나의 모든것을 털어놓기 위해 얘기를 좀 거슬러 올라가야겠다.
내 고향은 함남 안변읍이다. 어릴때 기억으로는 매우 아담하고 고요한 고장이다. 가까이에 원산과 석왕사가 있으며, 관동팔경의 첫 경치로 이름난 총석형이 있는 통천·고저가 인접해 있고, 동남쪽으로는 황룡산이 우뚝 둘러싸고 있다. 그 사이를 남대천이 흐르는데 우리집은 이 강에서 대대로 연어를 잡는 어부의 가정이었다.
선친은 황찬식장로 이시며, 어머니께서는 「리디아」라는 세례명을 가지셨다. 1906년 병오 윤사월 초나흘에 태어난 나는 백일만에 세례를 받았다. 나를 인도한 목사는 초대 「캐나다」선교사였던 부일두목사(Foot)였는데 그는 나에게「안드레」라는 이름을 주었다.
그때는 나라 안팎이 어수선했다. 한반도에 대한 본격적인 잠식을 시작한 일제는 내가 태어나기 바로 전해에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고, 이듬해에 통감부를 설치했는데 이등박문이 초대 통감으로 나왔다.
우리 집안은 일찌기 기독교를 믿어 당시로는 상당히 개화된 편이었다. 어부였던 할아버지(황현)는 이미 대원군 시절에 「카톨릭」을 받아들여 숨어서 믿으셨다. 천주교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38선을 경계로 이남은 「프랑스」교구, 이북은 독일교구로 나뉘었기 때문에 함경도 사람들은 독일인 신부로부터 전도를 받았다.
그러나 신교 쪽으로는 함경도는 「캐나다」장노산의 선교구역이었다. 1891년 「캐나다」선교사「게일」목사가 한글로 된 마가 복음서를 나귀에 싣고 안변까지 찾아왔다. 이후부터 아버지는 개신교 신자가 되셨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우리 집안에 신앙변론을 불러 일으켜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마침내 종교적으로 갈라서게 됐다. 문제는 마가복음 6장3절의 해석이 발단이 되었다. 『예수의 형제들은 「야곱」과 「요셉」과 「유다」와 「시몬」이 아닌가. 그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않은가…』라는 귀절인데 한마디로 성모「마리아」는 예수 이외에도 자녀를 낳으셨다는 대목이다. 이 귀절은 천주교 성서에서는 여러 세기동안 원문에서 삭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의 조부도 그 귀절을 부인하셨다. 성모가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했을 뿐이며 그처럼 여러 자녀를 가졌다는 것은 성모를 모독한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마리아」가 계속 자녀를 낳은 것이 무슨 삼관이냐는 주장이었고, 결국 우리집은 신교와 구교로 나눠졌다.
내가 태어나기 전해에 구만이란 이름을 가진 맏형이 열병에 걸려 죽었다.
이 일을 두고 이웃과 친척들은 우리집이 예수장이가 된뒤 아들을 잃었다고 손가락질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듬해에 아들이 태어난데다 가을에는 연어대풍을 맞아 행운이 겹쳤다. 우리 이웃집들도 남대천에서 연어를 잡았는데 그해 가을 두달 동안 아버지가 잡은 연어는 1천6백 마리나 됐다. 연어 한 마리에 6전씩 했는데 가을걷이치고는 꽤 짭짤한 수입이었다. 역시, 예수를 믿고부터 복이 쏟아졌다고들 했으며 우리집을 보고 예수를 믿게된 이웃도 늘어났다고 한다.
우리 집은 부자는 아니었다. 연어가 좀 많이 잡히면 넉넉히 살았고. 잡히지 않은 해는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면서도 믿음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았다.
우리집은 많은 손님을 대접하기에 늘 분주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선친께서는 교회설립자요, 장로로서 자기 집안을 위해서는 조금도 저축한 일이 없었지만, 교회를 위해서는 아주 열심이었다. 수천 그루의 사과나무와 배나무 과수원을 교회재산으로 헌납하셨다. 그 교회는 안변장로 교회였는데, 「캐나다」장로교회라고도 했다. 그러나 총회는 대한예수교 장로의 총회 산하에 있었다.
함경도에는 수백개의 교회가 세워졌지만 아버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안변장로 교회가 제일 부자교회가 됐다. 「안드레」라는 나의 세례명은 성서에 나오는 예수 제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성「베드로」를 인도하여 하루에 3천명씩 전도케하고 빵다섯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쳐서 5천명을 배부르게 먹게한 기적(마가복음6장30절)을 이루게한 어린 소년을 예수께로 인도한 일외에는 별로 한 일을 찾을 길 없는「안드레」의 일생과도 같이 나도 말없이 순교하고 싶은것이 소망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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