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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정론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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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하야전의 「닉슨」대통령은 「워터 게이트」의 은폐가 미국의 국가이익에 합치한다고 믿었고 이에 대해 도덕률이 사회정의 구현의 지름길이라고 확신한 쪽은 「워싱턴·포스트」였다. 「잭·앤더슨」은 『햇볕이 최선의 해독제』라고 했고 어떤 이는 신문을 사회의 소금이라고도 한다. 햇볕이나 소금의 살균·표백·방부작용을 신문의 기능에 비유한 것이다. 적어도 언론은 그 사회를 이끄는 바퀴중의 하나임에 틀림없고 또 그래야만 한다.
현재 세계에는 4만5천에 이르는 각종 신문이 5억부 이상 발행되고있다. 이중 일간지는 7천9백개, 발행부수는 3억9천만부 정도이다. 어떠한「매스컴」일지라도 그 나름대로 영향력을 미친다.

<국익위한 배려>
그러나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일류지, 소위고급지는 그렇게 많지는 않다. 미 「미주리」대학의「존·메릴」교수는「뉴욕·타임스」(미)·「노이에·취리히·차이퉁」(스위스)·「르·몽드」(불)·「더·타임스」와「더·가디언」(영)·「프라우다」(소련)·인민일보(중공)·「브르바」(유고)·「롯세르바트레·로마노」 (바티칸)·「아베세」 (스페인) 등을 세계의 10대 고급지로 선정했다. 이밖에도 「워싱턴·포스트」와「크리스천·사이언스·몬니터」
(미)·「프랑크푸르트·알마게니아·차이릉」(서독)·조일신문(일본)·「라·프탠사」(아르헨티나)·「다겐스·니히터」(스웨덴)·「엑셀시오터」(멕시코)·「코리에레·텔라·세라」(이탈리아) 같은 신문이 일류지에 든다.
신문의 질은 양에 비례하지 않는다. 「프라우다」·인민일보등 공산권 신문과 일본의 신문을 제외한 일류지는 발행부수가 1백만부를 넘지 않는다. 막강한 영향력은 보급부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신문의 질에 있음이 명백하다.
명성과 질이 높은 신문, 그리고 기자들은 역사의 향방을 바꾸는데 일조한다.
62년12월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결한「존·스캘리」기자는 바로 대외교관이었다.
소련에 의한 「미사일」기지건설을 탐지한 미국은 「쿠바」 에 이르는 해상통로를 무력봉쇄하고 기지의 즉각 철거를 요구했다. 「케네디」「흐루시초프」는 험악한 설전을 벌였고 온 세계는 숨을 죽였다. 「케네디」 자신도 3차대전의 주역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소련의 밀사는 외교문제 전문기자「스캘리」에게 중재를 부탁했다.「스캘리」를 만난 「케네디」는 그날 밤 비로소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이 사건은 냉전시대의 종말과 공존시대의 서장을 예고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하나 「스캘리」는 세기의 특징에 관해 단 한줄의 기사도 쓰지 않았다.
기자는 특종으로 살고, 특종에 죽는다. 기자가 특종 기사를 자진해서 쓰지 않는다는 것은 모주꾼이 술병을 외면하기보다도 더 어렵다. 「뉴욕·타임스」는 61년「케네디」행정부의 「쿠바」침공 계획을 알고 있었지만 일체 보도하지 않았다.
침공 시도가 무참히 실패한 뒤, 이 계획에 깊이 관여했던 「로버트·케네디」법무장관은 「뉴욕·타임스」의 「제임즈·레스턴」을 원망했다.

<편집권의 독립>
『당신이 사전에 입수한 정보를 기사화했던들 우리는 그런 엄청난 실책을 저지르지 않았을텐데….』
「레스턴」이 이때 받은 큰 충격은 71년6월 월남전에 관한 국방성기밀문서 특종 보도에 영향을 미쳤다.
이 사건은 언론자유 문제뿐만 아니라 언론이 추구하는 국가 이익과 관리가 보는 국가 이익중 어느 것이 차원이 높은 것이냐에 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레스턴」은 『사실을감추기 보다는 차라리 감옥을 택하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연방 대법원은 자유언론을 지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르·몽드」지는 『무자비하게 지성적인 신문』이란 평을 듣는다. 지난해 서울을 방문했던「앙드레·퐁텐」주필겸 편집국장은 『우리 신문엔 평기자와 부장의 구별이란 의미가 없다. 기자는 누구나 각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들이 쓰는 기사는 최고수준일 수밖에 없다』고 자랑했다.
「박사기자」들이 만드는 신문으로는「스위스」의 「노이에·춰리히·차이퉁」(NZZ)이나 서독의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더·차이퉁」(FAZ)이 꼽힌다. NZZ 편집기자 50여명중 30명 이상이 역사·경제·법률·문학 분야의 박사학위를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NZZ나 FAZ, 혹은「뉴욕·타임스」·「르·몽드」는 특파원이 보낸 기사는 단한자도 고치지 않는다. 올해로 창간 l백%돌을 맞은 NZZ는 고작 10만부로 세계정상에 오른 논설신문. 「톱」기사라는것이 따로 없고, 통단 제목을 쓰지않고 모든 제목을 명사구로 처리한다.
「뉴욕·타임스」는 『우리 신문에 실리지 않은 사건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다』고 할만큼 완전한 기록자임을 자부한다.
대량교육의 보급과 사회구조의 변화는 신문계에도 변화를 재촉했다. 70∼75년 사이에 91만부에서 83만부로 떨어진「뉴욕·타임스」도 75년부터는 흥미위주의 읽을거리와 생활정보·지역특성에 맞는 주간부록등을 발행하고 있다. 「설즈버거」사장은 『우리가 좋아하지는 않지만 독자가 윈하니 별 도리가 없다』고 했다.
일류 신문의 공통된 특징의 하나는 편집권의 독립이 확립돼 있다는 것.
2차대전후에 창간된 서독의 FAZ나 「드골」이 산파역을 맡았던「르·몽드」는 사원 주주회사다. 특히 FAZ에는 주필이란 직책이 없다. 제작방향은 발행인과 전체 기자와의 회합에서 결정되며 편집국장은 조정자로서 기능한다. 발행인 자신이 현직기자로 논설을 쓰며, 기자들은 수평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이 신문은 거물기자들의 동인지라고 불린다. 「르·몽드」는 주식의 28%를 기자에게 배당함으로써 기자들이 중요정책결정에 참여한다.

<아첨않는 신문>
「뉴욕·타임스」의 각 부장은 기사때문에 지면이 필요하면 광고를 밀어낼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도 편집국과 광고국을 항상 『이혼상태』에 두어 편집국 우위를 보장한다. 이러한 신문들일수록 기자들이 우대된다. 「노이에·취리히·차이퉁」은 주식 이익배당에 7만2천 「프랑」을 지출할때 2백50만 「프랑」이상을 사원의 복지후생비로 쓴다.
경영주들은 경영의 혹자가 수준 높은 지면 제작에 투자하는 액수에 비례한다고 믿고 있다.
정론지의 기능은 권력의 부당한 행사에 대한 비판으로 나타난다. 「더·타임스」는 흔히 영국 정부를 대변한다는 말을 듣는다. 이를 두고 어떤 학자는 주필이 약할 때는 「더·타임스」가 친정부적이 되고, 강할 때는 영국 정부가 친「더·타임스」적이 된다고 평가했다.
「프랑스」제5공화국 초기에「르·몽드」는 「드골」의 정책을 대체로 지지했다. 그러나「인도차이나」전쟁을 『더러운 전쟁』으로 규정하고 『늙은 「드골」은 물러나라』고 요구한 것은 「르·몽드」였다.
「존슨」대통령도 월남전에 대한 비판을 누그러뜨리려고 「뉴욕·타임스」에 특종을 흘려 주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뉴욕·타임스」는 68년 대통령선거전에서 『「닉슨」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킬 수 없는 몇 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이같은 신문 자체의 의견표명에 대해 「노이에·취리히·차이퉁」지는 『독자와 마찬가지로 신문도 일정한 의견을 가져야한다. 신문이 단편적인「뉴스」의 「모자이크」가 돼서는 안된다. 만일 어떤 신문이 정치적 중립으로 도피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적 여론 형성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나 언론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일본의 경우에는 금기사항이 많다. 7백만부에 육박하는 「아사히」나「요미우리」는 전통적으로 천황·은행·창가학회관계 기사를 외면한다.
동경대 「쓰지무라·아끼라」 (우촌명)교수가 『북괴에 관용을 베풀고 한국에는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편향보도를 한다』고 지적했듯이 일본신문의 대중공·북괴관계 보도는 공정을 잃고 있다.
「아사히」나 「요미우리」는 연재소설·만화·「컬러」판등 마치 백화점의 진열대처럼 질보다는 양으로 경쟁한다.
치열한 판매전쟁 때문에 독자에 대한「보너스」제공·「센세이셔널」한 보도로 독자를 유인한다. 공익성보다는 상업성에 치중한 나머지 과장이나 추측보도가 난무한다. 한국의 여러신문이 일본신문의 「패턴」을 받아들이고 있는것은 국제적 안목에서 재고할 때가됐다.

<역사의 기록>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보도 이후 미국 언론계에는 「우드스틴」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로버트·우드워드」와 「칼·번스틴」같이 돈과 명성을 함께 얻는 수사기자 지망생이 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로인를」편집국장은 수사기자가 탐정·변호사·사회개혁가의 구실을 한몫 한다고 했다.
동지의「세이무어·허시」기자는 혼자서 「밀라이」학살사건·「나발」의 북폭명령·「닉슨」의 「캄보디아」폭격명령을 파헤쳤고, 「닐·시한」기자는 국방성 기밀문서를 보도했다.
「후버」CIA국장이나 「키신저」박동관씨집의 쓰레기통을 기웃거리는 사건기자들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신문이 선정주의로 흐르고 여러 종류의 가진 자의 눈치를 살피는 경향이 늘어도 역시 세계를 이끄는 대신문의 높은 이상, 중용과 자제가 계속되는한 정의는 서서히 이뤄질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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