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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엔 아직도 … " 선원 15명 죄목 읽던 검사도 울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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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월호 선원 15명에 대한 첫 재판이 10일 광주지법에서 열렸다. 이준석 선장이 법원으로 가기 위해 광주지검 구치감을 나서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로이터=뉴스1]

방청석을 메운 세월호 사고 피해자들만 흐느낀 게 아니었다. 공소 사실을 읽어 내려가던 검사도, 방청객에게 재판에 대해 설명하던 판사도 목이 메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은 건 시종일관 굳은 표정이었던 피고인 이준석(69) 선장과 선원 14명뿐이었다.

 이 선장 등 15명에 대한 첫 재판이 열린 10일 오후 1시40분 광주지방법원. 경기도 안산에서 재판을 보러 온 희생자 가족 90여 명이 관광버스에서 내렸다. 일부는 ‘네놈들이 사람이냐. 짐승만도 못한 XX’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들어가려다 제지당했다. 전남 진도 팽목항에 있던 실종자 가족 일부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타고 도착했다.

 이날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확인하고 앞으로 어떻게 재판을 해 나갈지 절차를 정하는 공판준비기일 첫날이었다. 오후 2시22분 베이지색 수의(囚衣)를 입은 이 선장을 필두로 피고인들이 법정에 들어왔다. 이 선장은 광대뼈가 살짝 드러나는 등 약간 마른 모습이었다. 방청석에선 “살인자!” “당신 자식이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야?”라는 등의 고함이 터졌다.

 임정엽(44) 부장판사가 희생자 가족 대표 김병권(47)씨에게 발언 기회를 줬다. 그는 희생된 단원고 2학년 김모양의 아버지다. 김씨는 약 5분간 말을 이어 나갔다. "피고인들은 승객만 죽이지 않았다. 우리 가족의 영혼, 우리 사회의 기본적 신뢰까지 모두 죽였다. 철저한 진실 규명과 엄정한 처벌을 원한다. …(중략)… 피고인들에게 한 말씀 올리겠다. 진실을 말해 달라. 꼭 부탁한다. 당신 자식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진실을 말해 달라.”

이날 법원에서는 피켓을 들고 입장하려던 유가족들을 법원 직원들이 막는 과정에서 몸싸움도 벌어졌다. [프리랜서 장정필], [로이터=뉴스1]

 피고인 신원을 확인한 뒤 광주지검 박재억(43) 강력부장이 기소 취지를 말했다. 이 선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 없이 배에서 이탈해 승객들을 사망케 하거나 미수에 그친 것임. 죄명은 살인, 살인미수, 업무상 과실 선박매몰… (이하 생략)” 등이라고 했다. 15명에 대한 기소 취지를 하나하나 밝힌 뒤 발언을 이어 가다 “아직 생사 여부조차 확인하지 못한 가족들이 저 멀리 진도 팽목항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라는 대목에서 눈물을 보이며 잠시 말을 끊었다.

 이 선장의 국선변호인은 “사고 직후 이 선장이 꼬리뼈를 다쳤고 학생과 기타 희생자에게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의도적으로 구호조치를 하지 않고 탈출했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를 부인했다. 변호인은 “승객들에 대한 구조는 사고 초기부터 종합적으로 모니터링을 한 해경에 의해 이뤄지는 게 합당하다”고도 했다. 다른 변호인들도 대부분 혐의를 부인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15명 중 11명에 대한 변호인 발언이 끝난 뒤 오후 5시52분에 이날 재판을 마무리했다. 피고인들은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굳은 표정으로 법정을 빠져나갔다. 재판 말미에 임정엽 재판장은 “세월호와 구조가 비슷한 오하마나호 현장검증을 가 보겠다. 재판부가 전부 돌아다니며 봐야 이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세월호 사고 희생자를 애도하는 의미에서 이날 방청객에 앞서 가장 먼저 퇴정하는 관례를 깨고 제일 늦게 법정을 나왔다.

 재판이 끝난 뒤 일부 희생자 가족은 피고인들이 타고 갈 호송버스를 가로막고 “이 선장 등은 유가족 앞에 나와 진심을 담아 사과하라”고 했다. 또 다른 피해자들은 ‘아이들의 영혼이 보고 있다’ ‘판사님의 현명한 재판을 믿는다’ 등이 적힌 팻말을 들고 법원 앞에 앉아 시위했다. 이들은 오후 7시35분 농성을 풀었다.

 재판부와 검찰·변호인은 검토할 증거자료가 많아 앞으로 한두 차례 더 공판준비기일을 가진 뒤 본 재판을 열기로 했다. 검찰이 제출한 문서 증거자료만 1만 페이지가 넘는다. 다음 공판준비기일은 17일이다.

광주=최경호·권철암·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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