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수비수들은 좀 더 냉정하고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가나전 한국의 첫 번째 실점은 김창수(29·가시와)의 패스미스가 원인이 됐다. 두 번째 실점은 수비수 곽태휘(33·알힐랄)가 심판이 파울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순간적으로 느슨해진 데서 비롯됐다.
축구는 실수의 스포츠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월드컵은 자그마한 실수 하나, 조금의 안일한 생각도 용납되지 않는 무대다. 한국만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32개국 선수 모두가 피땀 흘려가며 준비하고 있다. 상대방은 0.01%의 아주 미세한 실수 하나까지도 노리고 들어온다. 러시아와 첫 경기까지 남은 기간 선수들이 명심했으면 한다.
한국이 전반 11분 첫 골을 내준 뒤의 상황도 아쉽다. 골은 초반에 나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넣었든 내줬든 남은 시간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실점 후에 만회하기 위해 서두르다 조직이 무너지면 추가골을 허용한다. 1골만 넣으면 따라붙을 수 있는 경기가 2, 3골 차로 벌어지면 더 어려워진다. 골을 내준 다음일수록 수비를 더 끈끈히 해야 하고 수비 조직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가 선제골을 넣은 다음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경기 시작 1분 만에 행운의 득점을 했다고 치자. 그대로 1-0 승리로 경기가 끝나는 게 아니지 않나. 아직 89분이 남아 있다. 1골로 실망할 필요도, 만족할 이유도 없다는 뜻이다.
골키퍼 정성룡(29·수원)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골키퍼가 실수를 했든,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든 4골이나 내준 것은 골키퍼 잘못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네 번째 골을 허용할 때 정성룡이 수비수 홍정호(25·아우크스부르크)에게 상대 선수를 끝까지 마크하라고 체크해 줄 여유가 있었는데 그렇게 못했다. 세 번째 실점이 된 중거리 슛도 분명 막기에 쉽지 않은 코스였다. 하지만 골키퍼가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 끝까지 몸을 날리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 선수들은 분명 열심히 뛰었다. 튀니지와 평가전(5월 28일)과 비교해 보면 체력이 많이 올라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많이 뛰는 게 능사가 아니다. 효율적이어야 한다. 경기가 잘 안 풀릴 때 선수들끼리 의사소통을 더 많이 해야 한다. 홍명보호를 향해 그라운드 안에 감독이 없다는 지적을 한다. 남아공 월드컵 때는 박지성(33·은퇴)이 주장으로 그런 역할을 잘 했고, 수비에서는 이영표(37·은퇴)가 후배들을 리드했다. 지금 대표팀 선수들은 스스로 리더가 돼야 한다. 나만 잘하겠다는 생각을 넘어 동료를 독려하고 도와줄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23명 선수들에게 꼭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후배들아, 고개 숙이지 말아라. 아직 뚜껑은 열리지 않았다. 준비할 시간이 남아 있다. 평가전은 평가전일 뿐이라고 위안을 삼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잊지 말아라. 너희들 각자가 이 경기를 계기로 생각과 마음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전화위복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경기는 그냥 치욕적인 패배로만 남는다. 생각과 마음을 바꾸는 것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옆에서 감독과 코치, 스태프들이 도와주겠지만 진짜 깨달았느냐 아니냐는 본인만 안다. 23명 각자 스스로 쇄신해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보인다.
중앙일보 해설위원·U-23 대표팀 골키퍼 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