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0.01% 실수로 4실점, 그게 월드컵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박주영이 가나의 수비에 걸려 넘어졌다. 박주영은 스트라이커다운 면모를 보이지 못했다. 박주영의 얼굴 앞에 야속하게 놓인 브라주카는 한국의 골네트만 4번이나 갈랐다. 한국은 볼 점유율에서는 6대 4로 앞섰지만 좀처럼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지 못했다. [마이애미=뉴시스]

먼저 수비수들은 좀 더 냉정하고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가나전 한국의 첫 번째 실점은 김창수(29·가시와)의 패스미스가 원인이 됐다. 두 번째 실점은 수비수 곽태휘(33·알힐랄)가 심판이 파울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순간적으로 느슨해진 데서 비롯됐다.

 축구는 실수의 스포츠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월드컵은 자그마한 실수 하나, 조금의 안일한 생각도 용납되지 않는 무대다. 한국만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32개국 선수 모두가 피땀 흘려가며 준비하고 있다. 상대방은 0.01%의 아주 미세한 실수 하나까지도 노리고 들어온다. 러시아와 첫 경기까지 남은 기간 선수들이 명심했으면 한다.

8강을 염원하며 교민 팬이 8광 화투에 홍명보 감독 얼굴을 합성해 응원하고 있다. [마이애미=뉴시스]

 한국이 전반 11분 첫 골을 내준 뒤의 상황도 아쉽다. 골은 초반에 나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넣었든 내줬든 남은 시간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실점 후에 만회하기 위해 서두르다 조직이 무너지면 추가골을 허용한다. 1골만 넣으면 따라붙을 수 있는 경기가 2, 3골 차로 벌어지면 더 어려워진다. 골을 내준 다음일수록 수비를 더 끈끈히 해야 하고 수비 조직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가 선제골을 넣은 다음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경기 시작 1분 만에 행운의 득점을 했다고 치자. 그대로 1-0 승리로 경기가 끝나는 게 아니지 않나. 아직 89분이 남아 있다. 1골로 실망할 필요도, 만족할 이유도 없다는 뜻이다.

 골키퍼 정성룡(29·수원)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골키퍼가 실수를 했든,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든 4골이나 내준 것은 골키퍼 잘못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네 번째 골을 허용할 때 정성룡이 수비수 홍정호(25·아우크스부르크)에게 상대 선수를 끝까지 마크하라고 체크해 줄 여유가 있었는데 그렇게 못했다. 세 번째 실점이 된 중거리 슛도 분명 막기에 쉽지 않은 코스였다. 하지만 골키퍼가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 끝까지 몸을 날리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 선수들은 분명 열심히 뛰었다. 튀니지와 평가전(5월 28일)과 비교해 보면 체력이 많이 올라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많이 뛰는 게 능사가 아니다. 효율적이어야 한다. 경기가 잘 안 풀릴 때 선수들끼리 의사소통을 더 많이 해야 한다. 홍명보호를 향해 그라운드 안에 감독이 없다는 지적을 한다. 남아공 월드컵 때는 박지성(33·은퇴)이 주장으로 그런 역할을 잘 했고, 수비에서는 이영표(37·은퇴)가 후배들을 리드했다. 지금 대표팀 선수들은 스스로 리더가 돼야 한다. 나만 잘하겠다는 생각을 넘어 동료를 독려하고 도와줄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23명 선수들에게 꼭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후배들아, 고개 숙이지 말아라. 아직 뚜껑은 열리지 않았다. 준비할 시간이 남아 있다. 평가전은 평가전일 뿐이라고 위안을 삼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잊지 말아라. 너희들 각자가 이 경기를 계기로 생각과 마음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전화위복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경기는 그냥 치욕적인 패배로만 남는다. 생각과 마음을 바꾸는 것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옆에서 감독과 코치, 스태프들이 도와주겠지만 진짜 깨달았느냐 아니냐는 본인만 안다. 23명 각자 스스로 쇄신해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보인다.

중앙일보 해설위원·U-23 대표팀 골키퍼 코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