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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병기 후보자, 바닥 친 국정원 신뢰 회복시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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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이 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이병기 주일본 대사를 지명했다. 남재준 전 원장이 경질된 지 20일 만이다. 이 후보자가 한민구 국방장관 내정자와 함께 국회 청문회를 통과하면 박근혜 정부의 2기 외교안보 라인의 진용이 갖춰지게 된다. 국정원장 후보자에 군 출신이 아닌 직업 외교관 출신으로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지명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이 후보자는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특보와 해외 담당 2차장을 지냈으며, 2차장 재임 당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한국 망명 실무 책임을 맡았다.

 이 후보자에게 주어진 과제는 막중하다. 국정원 내부 개혁은 발등의 불이다. 국정원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의 댓글 사건, 2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로 정치적 논란의 한복판에 있었다. 정치적 중립이 생명인 정보기관으로서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후보자는 국정원을 정권 이익이 아닌 국가 이익, 정권 안보가 아닌 국가 안보의 중추가 되도록 하는 개혁을 멈춰선 안 된다.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정보기관은 설 땅이 없다. 이 후보자 스스로도 정보기관의 탈정치, 탈권력 없이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국정원의 역량 강화도 과제다. 국정원 직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은 국정원의 불법, 대공 수사력 무능과 더불어 해외 정보력 부재도 드러냈다. 국정원 본연의 업무인 정보 능력을 높이기 위한 인적·제도적 쇄신이 동반돼야 한다. 능력 본위, 적재적소의 인사와 전문성을 살리는 제도 없이는 무한 정보 경쟁 시대에 대처하지 못한다. 성공은 알려지지 않고, 실패만 선전되는 세계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사기도 올라갈 수가 없다.

 새 국정원장 후보자 지명은 대북 정책을 재검토하는 계기도 돼야 한다. 전임 원장의 강경한 대북관이 정책의 유연성을 떨어뜨린 측면도 없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후보자는 노태우 대통령의 의전수석으로 일하면서 북방 외교에 일조한 경험도 있고, 최근의 북·일 접근도 가장 잘 알고 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공조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남북 관계의 숨통을 틔우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